오늘 아침에도 그 동안 온 것 만큼 눈이 와 있었다.
조카와 또 한번 <줄리엔 줄리아>를 한번 더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와 달리 요리가 더 자세히 보였다.
그 요리를 나도 만들어 보고 싶어지게 까지 만들었다.
그녀가 버터에 열광했었던 이유를 이제야 나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빵수업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서 좋은 버터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가자미를 통채로 버터에 구운 그림이 나오니
<엄마 저 것 꼭 해먹어보자.>
<<좋아>>
무언가 목표를 향한 그녀의 집념 또한 도전이 되었다.
요리를 시작하여 그 영역의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열정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닮고 싶어졌다.
동생과 올케도 늦게 와서 다같이 보니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올케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까봐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일부러 한편도 보지 않았었단다.
정말 오랜만에 미국영화를 본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파왔다.
큰조카가 <엄마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으로 마음이 흔들리면 되겠냐?>고 말하니
<나는 그런것으로 충분히 흔들릴 수 있어>하고 대답했다.
30년을 그곳에서 살았으니 오죽하랴 싶어졌다.
나이들은 사람들의 향수병을 십대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또 영화 <아이덴티티>도 보았다.
정말 무서웠다.
다중 인격을 다루었는데 의사였지만 사람이 타인의 삶을 분석한다는 것이 많은 오류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번 더 보아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게 되니 서로 열광하는 부분이 달라서 흥미롭다.
아마도 영화의 영향력은 아이들에게 훨씬 더 크리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아이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의 문화를 공유한 기쁨이 정말 컸다.
딸아이가 잠자러 올라가면
<벌써가니?>하면
<<엄마 조금있다가 올라 와>>
<알았어>
곁에 있던 남편이 부러움을 가득담아 말한다.
(당신은 친구 같은 딸이 있어 좋겠다)
<<물론이지 당신도 아들을 친구처럼 만들어 봐>>
오늘 부터 작은아이와 남편이 수학을 같이 공부하였다.
미리 예습을 하는 것이었는데 정확하게 개념을 알려주고 몇 문제 풀어 주고 스스로
풀어보게 숙제를 내 주었다.
30분 정도 지난 후 아이 방에 다시 들어가 확인하더니
정말 잘한다며 칭찬을 하였다.
수학만큼 모방을 잘 해야하는 것이 없단다.
머리와 눈썰미가 필요한데 아이가 곧 잘 한단다.
작은 아이가 공부할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이 분명한 것 같아 감사하다.
아빠의 실력을 알면서도 선뜻 배우지 못했었는데 이젠 마음이 급하긴 급한가 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친구같은 부자지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