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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걸상 2025. 6. 12. 01:14

또 북유럽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변화가 싫어 여행을 싫어한다는 주인공 브릿마리는 집을 떠난다. 브릿마리는 모든 것이 똑같은 집에 머물기를 꿈꾼다. 그녀가 집을 떠나 겪는 삶의 여정이 정말 재미있게 펼쳐진다. 주인공이 “밤을 새워운다”로 시작한 7 챕터에서 “누군가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은 밤을 새우는데 이골이나 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나의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엄마는 세계 어느 곳이나 같은 모습으로 사는구나 싶었다. 누군가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있었던 터라 그랬던 것 같았다. 예순 살이어서 나와 비슷한 연배의 주인공이 왜 그렇게 청소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무언지 알 수 없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서글픔이 몰려왔다.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을 갖게 되어 빨려 들게 만들곤 한다. 생각의 기저가 동시대여서 그런 것 같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는 과감하게 자신의 둥지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몸서리쳐지도록 그리운 자기 공간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480여 쪽의 두꺼운 책인데 저자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 필체로 스피디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궁금하여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현세대를 반영하는 것이 소설이어서 이 부분을 굳이 써야 했는가 싶은 부분도 있었다.

자신을 쥐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스스로를 향한 규정들을 쥐에게 늘 고백한다. 혼잣말 같은 것이나 쥐라는 존재는 자신을 말할 수 있게 한다.

어떤 축구팀을 좋아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알려 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한인 간을 파악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평생이 걸린다. 집이 진정한 집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만큼이다. 남편이 보내 준 자주색 튤립을 꽃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기술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눈을 감으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린 결정을 모두 떠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모두 남을 위한 결정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결말을 호쾌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열린 결말이지만 잠깐 함께 했었던 사실만으로 엄청남 절망 속에 머물게 된 아이들에게 잔잔하고 생명력이 있는 큰 힘이 되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연작처럼 전작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하니 전작이 궁금해졌다.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잘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주인공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알아간다. 밑바닥부터 자신의 본모습으로 세상을 열어 갔었기에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