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에 알아교 3.5~4g와 물 1컵을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백반 4~5 알을 넣고 숟가락으로 저어가며 끓인다. 알아교는 실리카겔을 넣어 병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보통의 아교는 소의 힘줄로 만든것이다. 민어 부레로 만든 아교(어교)도 있다. 녹용의 뿔에서 채취한 아교는 녹교라고 한다. 건조 할때는 백반을 넣어 주는 이유는 발색과 안정화를 위함이라고 한다. 건조 정도에 따라 보통 3알이 적당한데 여름에는 4~5알을 넣어 주어도 좋다. 은은한 색감을 위해 칡뿌리나 녹찻잎, 치자나 오리나무 열매로 색감을 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림이 완성된 후 커피 에스프레소로 색을 입혀 아교물을 입혀 주면 오래 된 그림같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민화를 그리는 것은 완전 신세계였다. 한지위에 색을 입힐때 먼저 아교를 바르는 것도 정말 신기했다. 배경의 은은한 색감을 위해 분홍색이나 푸른색을 아교물에 섞어 미리 바르고 말린 뒤 본격적으로 색을 칠해야 한다. 초안이 완성되면 전날 밤 아교를 물에 담가 두었다가 풀을 쑤면 좋다고 한다.
나는 나를 입문하게 만들어 준 언니가 수업 전날 미리 아교풀을 칠해 주어 잘 마른 후 다림질을 해서 가지고 갔었다. 수업시간에 아교풀을 바른 사람들은 드라이어와 다리미로 말려서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국화용 물감을 1:4로 희석한 아교물을 섞어 농도를 맞추고 색을 만들어 내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빠레트위에서 굳은 물감을 1:8로 희석한 아교물을 섞어 주어야 한단다. 그것도 모르고 집에 와서 초안을 그리다가 아교물이 아닌 그냥 물을 넣어 다 번져 버렸었다. 덕분에 초안을 세번이나 그렸으니 정말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그림전체를 이해하며 초안을 그릴 수 있어 감사했다. 흰색이 나는 호분을 맨처음 칠하였다. 연한색에서 시작하여 짙은 색은 마지막에 칠하고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칠해야 하는 기초적인 것도 내겐 신기함 그자체였다.
색을 칠하는 것은 조금 쉬울 줄 알았는데 더 어려웠다. 붓털과 가까운 쪽을 잡고 색을 칠해야 하는데 마치 풀을 쳐 바르듯이 붓의 끝쪽부분을 잡고 색을 칠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을 해 주셔서 고마웠다. 완전 유치원생과 다름이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었다. 마음만은 마치 대가가 된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어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나 스스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싶었다. 은자 언니가 색을 칠하는 법을 직접 칠해 주면서 붓을 쥐는 법까지 하나 하나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실망하여 포기 했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곁에서 친절하게 도와 주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힘이 되는지 정말 감사했다. 색을 칠하고 색을 칠한 자국이 남지 않게 바림붓으로 닦아 주는 것도 신기했다. 경계선이 그라데이션이 되도록 해주기 위해 바림붓으로 마무리를 꼭 해주어야 한다. 선생님은 순식간에 쓱싹 쓱싹 마술처럼 쉽게 그리셨다. 내게는 모든 과정이 정말 어렵게 느껴졌다. 바림을 하는 시작점도 찾아 그리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처음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겠구나!’ 싶어 지향언니 생각을 한참동안이나 하게 만들었다. 규방공예를 배울 때도 홈질 조차 제대로 못하고 삐뚤 빼뚤하게 하는 것이 너무 창피하였었다. 그런데 민화를 배우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수학은 늘 넘사벽같은 거대한 산이 매일 가로 막고 있어서 겸허진다고 고백하곤 했었는데 내겐 민화도 그런 것 같다. 아니 새로 배우게 되는 모든 것은 다 그런 것 같다. 어린아이 심정으로 그 앞에 조아리지 않고는 배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인터넷으로 민화를 검색해 보면서 빠져들었다. 가슴이 울렁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으니 그래도 힘이 난다. 초안이 맘에 안들어서 또는 색을 칠하다가 실수를 하여 아교물을 바르지 않고 꽃에 호분을 칠한 분이 있었는데 더 이상 진행하면 안된다고 하였다. 아교를 바르는 것은 필수적이 공정이다. 바늘귀에 실을 꿰지 않고 바느질을 하려는 것처럼 급하거나 또는 한꺼번에 몰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물감을 살때 넣어 준 비닐팩에 그대로 넣어 갔더니 선생님이 통에 넣어 가지고 다니라고 조언을 해 주셨다. 덕분에 늘 덜렁거리며 살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살아 갈수록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