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께서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가장 감명깊었던 이야기가 이인응 선교사님 이야기였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져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딸의 장례식에 오백명이상의 아이들이 헌신했다는 부분이 너무 감명 깊었다. 크리스챤 투데이의 2006년에 쓰여진 글이었다. 늘 찾아 읽고 싶어 올려본다.
‘아프리카 인물 그림전’ 여는 이인응 선교사
“아프리카 영혼에 사랑 담아”
크리스찬투데이 | 기사입력 2006/03/08 [14:44]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 사역하다 딸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딸을 데려가셨지만, 그 대신 더 많은 아프리카 영혼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들의 얼굴과 함께 딸이 남겨준 아련한 추억과 복음을 화폭에 담아 주님의 아름다운 사랑과 역사하심을 전하렵니다."
16년째 아프리카 기니 비사우에서 사역중인 이인응 선교사(52)가 미국과 한국 등을 돌며 '아프리카 인물 그림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선교사역에만 전념하던 이 선교사가 크레파스를 다시 들고 아프리카 인물 그리기에 몰두하게된 것은 맏딸 두제양 때문이다. 2004년 8월 당시 20세로 미국서 유학다가 방학을 맞아 부모를 만나러 잠시 아프리카에 돌아온 두제는 친구에게 택시를 잡아주다 강도를 만나 목숨을 잃게 됐다. 더 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있던 어느날, 딸이 쓰던 크레파스가 이 선교사의 눈에 띄었다. "아빠는 화가인데 왜 그림을 안그려요" 묻던 딸아이의 말이 생각났다. 이 크레파스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기니 비사우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현지어인 크레욜언어로 이 선교사의 신앙고백을 담은 성경말씀과 딸아이에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를 마치 문양처럼 그림에 새겼다. 이렇게 아프리카 인물 그림 33점이 완성됐다.
"어두운 색깔들을 주로 사용해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깊이를 그림 속에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이자 삶인 언어를 말씀 속에 새겨 넣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 손에 이끌려 아프리카 땅에 와서 작은 선교사의 몫을 감당하다가 주님 품으로 떠난,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아빠의 그림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두제가 다섯 살 때 두 살 짜리 남동생과 함께 기니 비사우로 왔다. 여러 풍토병과 척박한 환경으로 어려움을 많이 겼었지만, 딸아이는 항상 밝고 명랑했다. 두제는 망고파리가 빨래에 알을 깐 걸 모르고 옷을 입었다가 척추 사이사이에 구더기가 생기고 피부병으로 머리가 빠진 일도 있었다. 세네갈 선교사 자녀 기숙학교에 위탁해 공부했으며, 당시 남침례교재단 소속인 미 테네시주의 칼슨뉴만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전공은 그래픽이다. 이 대학 교회에서 두제 추모예배를 드렸는데, 500여명이 헌신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또 대학에 딸아이의 이름을 따서 선교사 자녀에게 주어지는 '두제장학회'가 발족하기도 했다.
계명대학교 미술대를 졸업하고 1980년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대에서 회화공부를 시작했다. 이 때 독신 여선교사의 인도로 주님을 영접하고 양육을 받았다. 6년여간 신앙과 그림을 병행했는데, 세속적 그림을 탈피하고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갈등이 있었다. 스페인령인 아프리카 서북부 그랑까나리아군도의 라스팔라스섬에서 3년간 친구 선교사의 사역을 도왔다. 여기서 소명의식을 느껴 기도하는 중에 평신도 선교사로 아프리카를 섬기기로 다짐했다. 감비아에서 이재환 선교사로부터 선교훈련을 받던 중, 기니 비사우 원주민들을 만나 정탐을 하게됐고 소명을 깨닫게 됐다. 89년 한인으로는 최초로 기니 비사우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16년여 동안 경제적 여력도 없었지만 기후가 너무 덥고 전기도 거의 없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영원한 선교사로 아프리카에 뼈를 묻을 것이다. 더불어 아프리카 인물 그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아프리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절망과 처참함이 아닌 아프리카의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그들만의 세계를 그림 속에 담을 것이다.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그림 성경이야기'를 출판하려고 한다. 문맹률이 80%-90%인 만큼 그림성경이 복음을 전하는 매우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