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잘 도착하였다고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다. 사위가 데리러 와 주었고 택시 안에서 사위의 전화로 통화를 하였었다.
새로운 나라에 가서 적응하는 과정을 일일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침 산책을 같이 하면서 기도를 하였다며 사진을 보내 주었다.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봄이 오고 있었다. 결혼을 하여 함께 가게 된 것이 정말 감사했다. 직항이 있는데도 “남편도 그렇게 갔었다. 의리를 지켜야 한다”면서 더 고생스러운 길을 선택하여 가는 것이 속상했었다. 여자이고 짐도 세 개나 되니 정말 걱정스러웠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순조롭게 잘 갈 수 있었단다. 직항 보다 90만 원 차이가 난다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아시아나 항공은 좋았었는데 미국 내 국내선에서는 가운데 자리에 콕 박혀서 네 시간 정도를 갔는데 정말 힘들었단다. “엄마가 오실 때는 고생스러우니 직항을 꼭 타고 오시라” 며 하루에 한 번 있다며 시간까지 자세히 알려 주었다. 소소하게 자신의 일상을 나누어 주니 고마웠다.
내가 아직도 시간 감각이 없어서 어리 어리 하다고 하니 큰 언니가 당신 딸이랑 늘 통화하는 시간대를 알려 주셨다. 형부가 유학을 가셨을 때는 카톡도 없어서 “엄마가 정말 답답하셨을 것 같다”시며 또 엄마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실 작은 아이가 처음 외국에 갔었을 때도 매일 보내 준 사진을 보며 마치 내가 거기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함께 감동하며 기뻐하며 흥분하였었다. 물론 큰 아이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내가 미국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남편이 ”매일 사진 한장씩이라도 꼭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는 얼마나 궁금하셨었을까!‘ 싶었다. 엄마와 같은 나이대에 엄마와 똑같은 모습으로 고민하여 살고 있어서 참 신기했다. 엄마가 걸어가신 그 길이 나에게 늘 기준이 되어 주는 것 같아 또 감사했다. 우리 가족은 자기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모습으로 적응하며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