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을 가기 전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릉에서 예상하지 못한 그림전시회를 보게 되었는데 ”정말 순간적으로 큰 위로와 안정감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는 이야기를 했었다. 노곤한 일상을 한순간 떠난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이렇게도 활력이 된다는 사실이 참 새로웠다. 늘 전시회에 가는 것을 갈망하는 편이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 전시회는 십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볼 수 있었던 타 지역작가와의 교류전이었다.
큰 아이와 남편에게 나의 그런 느낌을 이야기를 했더니 큰 아이가 “현대는 주님이 계실 자리에 예술이 대치되는 경우가 갈수록 현저하게 드러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삶이 세련되어 가고 선진국이 되어 갈수록 신보다는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를 찾아가게 되는 것 같다”는 말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르완다에서 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과는 정말 대조적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매일 밤 음악을 들을 때 받는 위로가 너무 커서 종교와도 같은 힘이 있다 “며 하나의 종교 현상과 버금간다는 이야기를 수련회에 나누었었던 기억이 났다.
르완다에는 삽 십 년이 채 안된 그 일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부활절날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설교를 하면 회중이 빨려 들어온다고 느낄 정도로 집중한다고 한다. 뜨거운 심령으로 찬양하는 모습이 내게는 정말 큰 도전이었다. 특별히 중고등부 학생들의 특별 찬양을 듣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사회를 보셨던 선교사님도 영혼을 울리는 찬양이었다고 고백을 하셨다. 나는 나의 학생시절과 우리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었을 때와 현재의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갈수록 영성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슬펐다. 토요일에 교회에 와서 온종일 청소하고 주일 찬양을 연습하는 소리가 늦게 까지 끊어지지 않았다. 왜 장로님께서 르완다에 오셔서 사역을 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고 정말 존경스러웠다. 같이 간 언니는 이제야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알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감싸는 엑스터시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어린이 예배 때 나의 양무릎에 두 명의 아이를 안고 있었을 정도로 아이들이 어른의 품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내가 어릴 적에도 청년 때에도 여름성경학교만 하면 아이들이 많이 모였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고 그리웠던 순간이기도 했다.
“예배 중에, 또 말씀선포 중에 삶의 변화를 결단하지 않지만 여행이나 예술작품(드라마, 음악, 영화, 책, 그림)의 그 모든 아름다움 앞에서 자신의 변화를 생각하고 결단하게 된다”는 말을 들으며 오랜 관습과도 같이 예배를 해 왔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세련된 예배를 늘 갈망하였는데 날 것의 모양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갈 줄 아는 어린이들이 참 귀하게 생각되었다. 예배 안에서 얻는 위로를 갈망할 줄 아는 어린이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어졌다.
한국에서도 교인들 중에 큰 교회에 다니는 자부심이 정말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지인이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예배의 장으로 공동체를 그렇게 커다랗게 세워 가신 선교사님들의 노고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고 존경의 마음이 넘쳐났다. 분명 하나님께서 소나기처럼 퍼붓듯이 내리시는 은혜와 또 당신의 갈망하심이 있기에 가능하였음을 안다. 그렇게 귀한 도구로 쓰인 고달프고 오랜 헌신의 깊이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 짧은 시간이나마 나로 하여금 가게 하시고 살펴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넘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해 힘들어하시던 타 지역의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늘 들어왔었는데 르완다는 정말 그곳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고 추수 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 성도들의 금요일 구역모임에도 따라갔었는데 통역을 해주셨어도 말을 제대로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회중 앞에서 당신들의 속마음을 가감 없이 토로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차 한잔과 빵 한 조각이 전부였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사모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또 헌신된 선교사님의 따님이 참 부러웠었다. 부모님의 헌신이 그녀에게 늘 도전이 되었을 것 같았다. 우리 부부도 우리 아이들에게 도전을 줄 수 있는 그런 부모이고 싶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삶 속에서 예배와 주님께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자녀들로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주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뒤범벅이 되어 사는 선교사님들의 사역과 삶을 보며 예배의 기쁨을 같이 누릴 수 있어서 행복했고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도전의 시간이어서 정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