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공항에서 나와 서울역에서 큰 아이를 만났고 주말이어서 기차표가 없어서 각자 다른 칸에 앉아 왔단다. 강릉역까지 마중을 나갔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친밀감도 그렇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아이와 함께 다니는데 도시가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자기 스스로도 어제까지 여기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란다.
복강경으로 맹장 수술을 하였었던 터라 “얼마나 아팠는지? 어떻게 병원에 갔는지?”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팠는데 병원에 가면 분명하게 수술할 것 같아 아픈 배를 움켜쥐고 목욕을 하고 병원에 갔단다. “샤워를 좋아하고 깨끗함을 추구하는 한국 남자인 것을 여실히 드러낸 모습”이라고 여자 친구와 그 가족들에게 엄청 놀림을 받았단다. 처음에는 “아프지 않으니 샤워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병원에 가자마자 기절을 하여 진통제를 맞아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단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눈동자 같이 안전하게 붙들어 주셨음을 알았다. 친구가 곁에 있었던 것도 정말 큰 은혜였다. “먹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막상 와서 먹어보니 상상하거나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맛이 있지 않다”라고 말해 온 가족이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추억은 늘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맛에 대한 생각도 누구나 만화처럼 극단적이거나 단순화시켜 과장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깨달았다.
늘 말을 재미있게 하는 편인데 소소하고 단순한 삶의 이야깃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함께 밥을 먹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다 모여 외식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강릉역에 마중을 갈 때도 어머니와 같이 갔고 또 큰 아이의 생일아침도 어머니를 초대했었다. 어머니께서도 정말 좋아하셔서 감사했다. 사위가 선물을 보내 주어 회를 먹었는데 이젠 각자가 양이 줄어 예전처럼 많이 먹을 수 없었지만 정말 행복했다. 오늘 점심에는 작은 아이가 “점심을 산다”라고 하여 토성집에 갔었다. “오랜만에 청국장을 먹어 맛있다” 고 하였다. ”생일이니 엄마가 밥을 안 하게 해 준다 “던 아이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어서 토성집에 중국음식이 배달되었는데 작은 아이의 정말 친한 친구가 왔었다. 결혼을 한 친구인데 아이도 생겼단다. 직업이 있어서 주간 야간 근무를 다 하는데 짬짬이 아르바이트도 한단다. 친구를 보니 가족의 삶을 책임져야만 하는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가 느껴진단다. 인생의 한 바퀴 굴려내시느라 애쓰셨고, 축하드립니다. 남은 날들, 자유롭고 행복하기길 바랍니다.
여행 잘 다녀오십시오.
사돈께서도 큰 아이 편으로 한지에 멋진 축하글과 함께 선물을 보내 주셨다. 얼마나 죄송하고 감사한지 감동 그 자체였다. 생애 주기중 적당한 시점에 결혼을 해 주니 사돈의 축하도 받을 수 있어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해 주셨는지 모른다. 마치 날 위해 작은 아이가 와 준 것이 되어 버렸으니 그 역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라고 독려하지 않아도 이젠 스스로 자기의 행할 일들을 챙겨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사하다. 기다려 주지 못하는 마음과 인생선배의 감성과 또 어른이니 앞날이 뻔히 보이기에 훈수 두려고 했던 부모의 애성이 관계를 그르치게 만들었음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서로 떨어져 있었고 함께 살지 않았었기에 관계가 더 좋아진 것 같아 감사했다. 그리움은 이해하는 마음을 훨씬 크게 만드는 것 같다. 며칠 함께 있는 동안 서로에게 좋은 순간만을 만들어 가고 싶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우리의 삶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늘 힘이 된다. 설령 우리가 실수하여 곁길로 갔을 때라도 주님께서 견고하게 붙들어 견인하여 주시고 온전하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감을 늘 갖는다.
이사야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