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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생일 즈음에

걸상 2022. 3. 5. 00:13

며칠 남지 않았는데 큰 아이가 사윗감이랑 함께 주말에 온다고 하였다. 남편이 “오랜만에 직장에 새삼스럽게 다니게 되고, 담임이고 새학기인데 얼마나 힘들겠냐?”며 한숨 돌리고 마음이 널널해지면 오란다. 남편의 진심어린 말에 큰 아이가 그럼 알겠단다. 오미크론도 걱정스럽단다. 사실 삼월이면 항상 몸살이 와서 고생했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남편이 자신보다 아이들을 더 깊히 생각해 주어 고마웠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쪼잔함 안에 하나님을 가두곤 하기 때문이다. 자위행위처럼 자신에게만 집중하느라 그 시간과 공간안에 함께 있는 타인의 힘듦을 생각하거나 배려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안에서는 더욱 그럴때가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이 우리 생일을 챙긴다고 하니 아직 우리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니 머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결혼해서 우리 어머니의 51세 생신때 부터 챙겨 드렸다. 자식의 결혼으로 인해 우리도 챙김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고마우면서도 아이들에게 짐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진다. 남편은 “생일이 뭐라고?” “아이들을 고생시키냐?”고 말했다. “그래 맞아!” “아이를 낳은 어머니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지!”

큰 아이가 작은 아이랑 통화를 했는데 “아빠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다 할 수 있도록 해주어 정말 고맙다”고 서로 말하는데 작은 아이가 울먹이더란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마도 남편은 그 말을 가장 큰 선물로 여겼을 것 같다. 남편은 와이셔츠를 선물로 받고 싶다고 하였다. 물질적인 크기가 아닌 아이들의 존경과 감격스러운 인정을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좋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멋진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늘 감사하다.

힘들 것 같아 전화도 못했는데 큰 아이는 퇴근하면서 작은 아이는 저녁을 만들고 있다면서 전화를 해 주었다. 큰 아이는 공부만 하다가 삼년만에 직장에 다니니 힘들어도 정말 좋단다. 작은 아이는 우리가 보고 싶다고 말하니 또 말을 잇지 못하며 버벅거렸다. 심리학 강사가 “자식은 남인데 나같은 남이어서 또 심정적으로 나보다 더 존귀한 남이어서 힘든 존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둘 다 활기차게 나름의 삶을 꾸리며 사는 모습이 정말 귀하고 아름답다고 생각되어 감사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더 크고 남다른 세상을 꿈꾸며 부모된 우리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앞에 설 수 있기를 늘 기도한다. 아이들이 어릴적에 드렸던 동일한 기도제목으로 하나님앞에 나아 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하나님 앞에서 부모된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