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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더운 날

걸상 2020. 8. 25. 22:09
오늘은 땀이 샘솟는 것처럼 흐르는 날이었다. 아침을 할 때도 땀이 났었는데 저녁을 할 때가 관건이었다. 아침에는 출근하는 남편, 아버지, 아들 순차적으로 차려서 취향저격을 하며 반찬을 만들어서 덜 덥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아침에는 두부구이와 마지막 남은 돈육으로 탕수육을 만들었다. 소스까지 만드느라 쉽지 않았다. 남편이 순두부를 사와 국을 끓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저녁은 여섯시 삼십분 즈음에 음식을 시작했다. 호박된장 찌개를 끓이고 호박잎을 찌고 닭다리살 구이를 만들었다. 땀이 세번정도 주르륵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빨리 차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편이 수저를 놓고 밥을 퍼 주었다. 상차리는 일도 함께 해주었다. 내가 너무 더워하는 것을 곁에서 보고 돕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엄마 왜 그렇게 땀이 많이 나냐?” 고 걱정스러워 했다. 호산장에서 사 온 (노할머니께서 늘 만들어 주셨던) 우뭇가사리(천초)로 만든 묵을 가늘게 채를 쳐 대접에 담아 호박채 볶음과 무채김치와 노각무침, 쇠고기채 볶음을 고명으로 올리고 양념장을 올려 주었다. 여름에 이것만한 음식이 따로 없다며 남편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요리 하면서 생긴 모든 피로가 다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냉면 국물을 얼려 두었던 것을 함께 주었더니 밥을 말아 정말 맛있게 먹어 주어 감사했다. 어제 저녁에 끓였던 호박 된장찌개를 깜빡 잊고 부엌에 방치하여 아침에 일어나 보니 쉬어 있었다. 더울수록 먹는 것에 신경을 더 바짝 쓰게 된다. 내 손에 달린 식구가 많으니 늘 조심스럽다. 밤에는 더위를 먹지 않게 하기 위해 매실청으로 얼음 음료수를 만들어 주었다. 샤워를 하고 나서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느낌이었다.

오후에는 친한 선생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었다. 주위 사람들이 “삶의 재미가 없다. 살 소망을 잃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재유행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누구나 지쳐 버리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버티어 보려고 용을 썼는데 이젠 맥을 탁 놓아 버리게 만든다. 위로를 받을 곳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란다. 늦더위는 며칠만 참으면 끝날텐데 코로나19는 아직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지니 걱정이다. 순간 순간의 존재함과 안위에 감사하면서 나름대로 가족과 함께함을 즐기며 사는 지혜를 얻게 되었지만 깜깜한 미래가 두렵다. 우리 자신의 자잘한 노력의 댓가도 기대 할 수 없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