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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길

걸상 2020. 1. 18. 23:40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선재길 보다 더 평탄한 길이었다. 초입의 삼나무 숲은 정말 압도적이었다.수령이 대략 80~90년쯤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굵고 멋스러웠다. 붉은 오름쪽에서 약 3km 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걸으면서 다른 계절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길 옆에 산수국이 많았는데 청초한 산수국꽃이 활짝 피었을때, 신록이 넘치는 오월과 초록이 지쳐가는 여름, 또 깊은 가을단풍이 가득할때도 와 보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되었다. 소개하는 글에서는 “일제때의 남벌이나 6.25 전화도 피해간 탓인지 사려니길 주변의 수목들은 육지보다 한결 풍성하고 짙다. 온화한 기후로 생장이 빠른 덕인지 수목들이 굵고 육감적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나무에게 육감적이라는 표현이 가당한가?’ 라는 의문을 던졌었다. 처음 삼나무 숲 길에 들어 섰을때 나무들이 얼마나 탐스러운지 만져 보고 기대보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마침 눈이 와서 그런지 물기를 충분히 머금은 숲이 주는 신선함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숲의 속살도 살가워서 길목을 돌때 마다 공기의 질이나 밀도의 다름이 확확 느껴질 정도였다.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라가 있어 든든한 기둥같은 나무 줄기마다 이끼들이 연두빛의 신비한 푸른빛을 띄고 있어서 심정적으로 흠뻑 빠져 들게 만들었다. 겨울이었는데도 이른 봄날의 버드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부드러운 연두빛을 보게 되어서다.

 

<제주 말로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의 살, 솔은 신성한 것을 뜻한다고 한다. 사려니 숲길은 곧 신성한 장소다. 실제로 걸어 보면 신의 땅이라고 할만큼 짙고 아름다우며 간혹 안개가 덮히면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명품 둘레길 66선” 이라는 책에서는 사려니 숲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걷기에 자신감만 넘쳤을 뿐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어서 걱정을 했었지만 생각보다 평지길이어서 좋았다. 누구에게나 함께 걷자고 권하고 싶은 길이었다. 눈이 덮혀 있어 더 멋스런자태를 뽑내는 나목들과 역시 눈때문에 더 선명한 초록의 상록수들이 어우러진 그 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숲길을 통과하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과 빛의 벙커를 관람하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 빛이 닮아 있어 참 신기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긴 직선위의 한 정점과도 같이 정말 짧은 여정이었기에 더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