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차거운 나의 두 손으로 감싸안고 눈을 감고 있다보면 화끈거리던 얼굴이 시원해져 오면서 한박자 쉰탓인지 마음도 차분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어제 언니들과 통화했던 내용과 지금 읽고 있는 책내용이 오버랩되면서 ‘그래 부모님을 요양원에 잘 보내 드린 것이야!’라고 되뇌이면서 위안을 삼아본다. 아직도 적응이 쉽지 만은 않으신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안산 언니가 말해 준 이야기가 머리속에서 맴돈다. 독일 영화에 “요양원을 빠져 나와 버스를 타신 어르신들이 어디서 내릴지 잘 몰라 다 돌고 돌아 버스에 올라 탔던 제자리로 다시 돌아온 버스에서 결국 요양원앞에 다시 내리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요양원이 삶의 마지막 장소라는 것을 자녀된 우리도 부모님들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곳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해오며 살았었다. 호주에 살다가 프랑스의 작은 고성을 사고 또 고치면서 있었던 일들을 적어놓은 책을 읽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지속적으로 내 마음속으로 의문을 던져 보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도 퇴직이 늦으셨었기에 큰 이변 없이 사시기가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퇴직을 하시자 마자 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 가셔서 사시겠다고 가셨었지만 육개월만에 돌아 오셨었다. 세입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당신 집으로 들어 가셔서 사시게 되었다. 그 집에서 십육년을 사시고 또 다시 아들이 살고 있던 광주로 이사를 가신지 팔년만에 요양원에 들어 가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짧은 것 같지만 살아 보면 긴세월임을 알기에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지금이 부모님께서 퇴직을 하시고 이십사년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소유하여서 갖게 되는 기쁨이 얼마나 잠깐인지를 알기때문이다. 어쩌면 나를 기쁨으로 넘치게 했던 그 소유물이 덩치가 클수록 나중에는 내 어깨를 짓눌러 어쩔수 없게 만드는 짐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퇴직에 비하면 우리는 팔년 정도 앞선 나이이기에 더 젊어서 준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부모님이 팔십육세에 광주로 이사 가실때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을 했었다. 곁에 같이 살고 싶었던 아들은 지금은 미국으로 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데 육십에 가까운 지금의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르고 닳도록 살것처럼 살지 말자고 다짐을 해본다. <나는 프랑스 사토에 산다>라는 책은 진즉에 받아서 읽었던 책인데 속도가 나지 않았었다. 집주인 할머니가 구십일세에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오년동안 방치 되었던 160년된 집을 구입하는 장면에서 부모님의 삶이 떠올랐다. 결국 자신도 언제가 못살게 될 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이사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아이에게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퇴직후 살게 될 집에 대한 준비에 너무 많은 것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막연한 환상으로 또 젊었을 적의 헌신을 회상하면서 남편에게 퇴직하고 일정기간 동안 수학을 가르치러 해외에 가서 살자고 늘 이야기 하는 나와 저자는 닮아 있었다. 주위 사람들을 살펴 보면 당신이 자신안에서 스스로 꺼내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소진하여 살아 버린 것 같아 보이시는 분이 있고 같은 나이대 인데도 여전히 에너지가 남아서 그 일을 넉넉히 감당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어 비교하며 신기해 한 적이 있었다. 집을 고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국에서도 같은 경험들을 많이 보아 왔기에 낯설지 않은 광경이어서 흥미가 한순간에 확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뒷부분은 다행이 그림이 많아서 쉽게 읽혔다. 참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가 정말 존경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