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큰 아이가 와 주었다. 어제는 시간이 맞지 않아 저녁을 같이 먹지 못했다. 오늘은 수육도 만들고 병어조림도 만들었다. 어머니께서 문어도 주셨다. 문어를 써는데 갈아 온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놀랄 정도였다. 수육, 문어, 가자미 식해까지 삼합으로 정말 특별했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어 감사했다. 작은 아이는 여전히 수육이 제일 맛있단다. 수육거리 고기를 남겨 두었는데 내일 또 만들어 주어야겠다. 밥을 차리다 보니 하이데거, 아렌트,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성경주석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이 커서 이야기의 주제도 남달라 져서 웃음이 나왔다. 큰 아이는 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또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어 우리 중 말씀으로 가장 뜨거워진 작은 아이 덕분이다. 정말 감사하다. 꼰대 같은 작은 아이가 되어 버렸다는 큰 아이의 말에 우리 모두가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커피가 먹고 싶다고 애교를 부려서 어제 볶아 놓은 콩을 갈아 커피를 내려오니 자신들이 좋아하는 맛이란다. 브라질 콩이라고 하였더니 이 원두로 가잔다. 어제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잠도 잘 수가 없었다. 무거운 짐들을 들고 나르느라 비도 정말 많이 맞았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수업에 참여하는 사 학년 아이가 나도 모르게 우산을 받쳐 주어 정말 고마웠었다. 남을 배려하는 아이여서 참 잘 키웠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감동을 주었다. 속옷까지 두 번이나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을 정도였었다. 바쁠 때면 순간 폭발적인 힘들을 써먹게 된다. 숨어 있던 로봇 팔이 나와서 불끈 솟는 힘으로 식재료 바구니와 머신을 들고뛰어다녔었다. 밤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사촌 여동생까지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그 순간이 영원히 있을 것만 같이 행동했었던 것 같아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었다. 어째튼 부모 된 우리가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우주였었고 전부였었는데 말이다. 아이히만 이야기를 하면서 가정 안에서 어두움 없이 끊임없는 통제로 아이들이 관리될 때에 도덕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고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 안에서 아이들이 홀로 어두움 속에 거할 수 있음이 용납될 때에 스스로 판단력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자신들에게 끝없는 잔소리로 옳을 길을 제시하며 다그침으로 부모가 원하는 옳음, 밝음으로만 채워주지 않고 스스로를 관리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그렇게 생활 속에서 너그러웠던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고백해 주어 감사했다.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집에 와 있으니 나의 바쁨보다 내 눈앞에 와 있는 아이들에게 집중해 주려고 노력하게 된다. 손주들이 생긴다면 유태인들처럼 주일날이면 온 가족이 서로 함께 함으로 유대감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말해 주고 싶다. 다 큰 아이들과 주일을 함께 보내는 날들이 더 이상 흔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갈수록 소중해지는 것 같다. 바라기는 이젠 우리는 스쳐지나가는 존재로 남아지고 주님만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온 우주이고 전부여 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