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은 짧은 달인데도 길게 느껴지곤 했었던 것 같다. 명절이 끼어 있긴 하지만 학창시절엔 학년이 올라 가기 바로 전이어서 그렇게 느끼곤 했었다. 변화무쌍한 삼월을 바로 앞에 둔 폭풍전야 와도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겨울의 끝자락이어서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지루함과 불안함이 섞여 있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었다. 대학때는 빨리 집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 지루한 기다림으로 목이 빠지는 것 같은 날들이기도 했었다. 한편으로 두려워 부디 더디게 흘러가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어째튼 이월은 봄을 기다리는 희망섞인 설레임과 긴 겨울을 덧없이 허망하게 흘러 보낸 것 같은 회한으로 가슴 아파했고 또 졸업,봄방학이 있어서 이별을 감내해야만 했었다. 일년 중 가장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들이 뒤엉켜 있게 되는 날들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불연속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 곤했다. 만화적이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다른 계절로 이어지고 새학년으로 가는 경계면의 순간들이서 그렇게 느껴진 것이라 생각된다.
남편이 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차를 고치러 강릉에 가겠다더니 출발 바로 전에 같이 가자고 연락을 주었다. ‘혼자 가기가 싫구나!’싶어 따라 나섰다. 남편은 지나 놓고 보니 자신이 계획하고 결정한 것 같았지만 자신의 걸음을 이끌어 가신 분은 하나님이셨음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전근가게 된 것도 큰 아이의 입학과 작은 아이의 어학공부도 모두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하심이었단다. 이월의 끝자락 즈음에 자신의 길을 돌이켜 보며 순간 순간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은혜임을 깨닫는다. 큰 아이도 중요한 포인트 마다 주님의 붙드심을 고백하곤 했다. 이사가게 된 집주인 선생님도 박사이신데 공부를 하려면 더 큰 꿈을 가져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단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신이 공부 할 때 더 깊게 공부 하였더라면 좋았을 것 같으셨단다. 아이가 걸어가게 될 길을 경험하신 분의 조언이어서 각별했을 것 같다. 작은 아이도 동일한 고백은 주님의 함께 하심을 늘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학을 보낼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참 놀랍다.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려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귀한 것 같아 감사하다. 남편은 자신이 가진 것이 1인데 100이상 인 것 처럼 더 많은 것을 꺼내어 누리고 살아 온 것 같다는 말을 하곤했었다. 우리 아이들도 주님안에서 부모된 우리보다 더 나은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섬겨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기도하게 된다.
우리가족 모두가 잠이 잘 오지 않은 밤이다. 이사를 앞두고 있는 큰 아이나 한국을 떠나야 하는 작은아이나 작은 아이를 떠나 보내기 위해 배웅을 하러 가야 하는 나까지 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은 또렷해져 가는 것만 같다. 공항에서 큰 아이와도 만나기로 했는데 눈동자 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온전히 지켜 주시리라 믿는다.
결국 자녀세대들에게 있어서 은혜의 통로는 부모세대인 것 같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흔들림없이 주님앞에 온전히 신앙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카페에 와서 북한에서 순교한 목사님을 아버지로 둔 분의 자랑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자신의 형제와 자손들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자랑하고 싶어서 오시곤 했었다.신앙의 일세대로 살아 가는 분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일세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 힘이 든다는 이야기다. 순교자나 사역자로서 헌신 하지는 못했지만 다행이도 나는 부모님으로 부터 신앙함을 물려 받은 복을 가졌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신앙의 본이 되어 자녀에게 우리 부모님과 동일하게 귀한 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잘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