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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순간들

걸상 2018. 3. 14. 01:01

 

얼마전이었다.

출근하려고 나가며 차에 기름을 넣으려면 농협 주유소에 들르기 위해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벌써 기름이 채워져 있었다.

남편이 혼자 새벽예배를 갔었는데 내차를 타고 갔었나보다.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했었는지 모른다.

미소가 절로 솟는 순간이었다.

 

작은 아이의 짐을 집에 가지고 왔다.

옷이 가장 많았다.

부엌살림도 갑자기 늘어난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짐속에서 기욤 뮈소의 책을 찾았다.

귀욤 뮈소를 읽고 나면 샤워기로 머릿속을 리후레쉬한 느낌이 나곤했었다.

영화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던 작가의 생각대로 <내일>이라는 책은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얼마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지 ....

이런 책들은 빨리 잊어 버리기 일쑤이다.

그런데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부부간의 이야기여서 그런가 보다.

사년동안 함께 살았고 완벽한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내가 죽고 일년동안 아이와 함께 사랑을 잃은 그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내는 사랑이 아닌 다른 생각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겉모습과 다르게 그냥 도구였음을 알게 되었을때의 남편의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까?

우리부부는 서로에게 도구처럼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미투로 인해 겉보기에 행복해 보였던 부부들의 이면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부부의 모습이랑 겹쳐보였다.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의기투합하여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어차피 수업을 위해 미리 사두어야할 식재료를 사기 위해 일찍 카페 문을 닫을 생각이었다.

이미 사 둔 재료도 있었지만 어떤 재료는 파는 곳에서만 팔기 때문이다.

남편도 마침 열한시에 퇴근하는 날이어서 쉽게 결정 할 수 있었다.

 

오늘 본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다.

큰 아이가 보고 와서 아무 설명없이 꼭 보라고만 하였었다.

역시 우리동네에 이런 작은 영화관이 생긴 것이 정말 좋다고 말하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최근에 읽은 책에 비하면 느릿하게 진행되고 밋밋한 편이었지만 시간이 아깝다거나 후회가 되지 않는 영화였다.

시간을 빼기 힘들고 같이 갈 사람을 찾기도 쉽지가 않아 영화를 내리기 전에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주인공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일본 만화가 원작인데 우리나라에 맞춰진 음식이 소재인 영화였다.

처음엔 나의 관심분야인 요리가 많이 나오는 영화여서 꼭 보라고 한 것인가?

아님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주인공은 누구나 자기만의 작은 숲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자신들의 일을 탐색하고 가꾸어가는 젊은이들의 성장이야기였다.

 

영화는 집을 떠났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 온 것 같은 뉘앙스를 주며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음식이 주는 소소한 행복들이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 미소짓게 만든다.

영화 전반 부의 시골 빈집에 홀로 돌아 온 주인공이 눈덮힌 밭에서 찾아낸 배추 고갱이로 배추전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저녁을 먹지 못하고 갔어서 침삼키는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아는 삶이 얼마나 고귀한 삶인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음식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얼마나 대충 먹고 살았는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내가 왜 늘 배고파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정성인 담긴 음식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법인데 말이다.

그 음식을 만들 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쁨으로 만들면서 즐길 줄 아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별것도 아닌 소소한 식재료들로 얼마나 소중하고 큰 행복을 건져가면서 살 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다래순을 따고 쑥을 캐는 여유가 참 부러웠던 순간이기도 했다.

참으로 음식은 삶의 활기를 갖게 하는 힘이 있다.

 

같이 살게 된 작은 아이 덕분에 더 많이 요리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주인공이 엄마가 해 준 음식을 기억해 내고 만들면서 아주심기를 하게 된 것처럼 나도 음식으로 아이들을 언젠가 자신의 살았던 고향으로 혹 자연으로, 사랑의 자리로, 올곧은 삶의 자리로 돌아오게 붙들 수 있을런지...

자신이 없다.

음식은 결국 절절한 사랑이 흐르는 도구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자랄때 먹었던 음식들은 특히나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