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를 보았다.
내가 고등학교때 있었던 사건들이 함께 연출되었었다.
가벼운 주제였기에 부담없이 볼 수 있어 좋았다.
기욤뮈소의 소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핸피엔딩이 그랬고 <종이여자>에 흑인 폭동때에 주인공이 친구의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과
데모와 상관 없이 상대 불량써클과 싸우는 것이 닮아 있었다.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기법도...
전체적인 짜임새가 자연스럽지 않았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득 아침마당의 리처드 기어가 생각났었다.
그가 아침마당에 와서 인터뷰하는데 그 발을꼬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럽던지...
우리나라 배우가 그렇게 앉아 있었더라면 건방지다 말은 안했었도 어색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좀 더 다듬어 졌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과속 스캔들을 보고 났을때도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나의 고교시절과는 다른 삶이어서 생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작은 아이가 고등학생이기에 공감이 되는 구석도 있었다.
정글과도 같은 학교 생활을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늘 모든 것을 나 자신과 비교하여 견주게 되는지...
<너의 출현은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는 유호정의 고백이 설득력이 없었기에
깊은 감동은 없었지만 깨알 같은 잔 재미가 있었다.
어째튼 시대를 반영하기에 웃음코드를 잘 만진 것 같다.
표정은 절대로 아닌데 용돈을 얻기 위해 아빠 사랑한다고 말하는 딸 아이의 표정이
우리 아이와 너무 닮아 있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흥행의 포인트를 잡아가는 나름의 방식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옛날에는 그림에 비춰지는 외국 영화의 생활상이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었다.
부엌가구나, 쇼파등 생활공간의 편리한 도구와 삶자체가 나의 생활과 동떨어지게 화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도 이젠 그 이상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 영화이기에 그만큼 우리나라도 잘 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영화가 끝난 시간은 밤9시 10분이었다.
선생님들과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출발한 시간은 밤10시였다.
큰 아이와 같이 오지 못해 미안했다.
돌아오는 차편에서 별 생각이 다 났었다.
엄마네 집에 갔다가 밤늦게 올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일도 없겠지 싶었다.
성시경이 라디오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마음 차분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