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친한 언니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도 연습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에 삼십 분 이상 일주일에 삼일 이상만이라도 치자고 생각했다. 벌써 일 년이 넘다 보니 생각보다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그냥 내가 즐겨 부르는 찬양곡 위주로 찬양을 하면서 치곤 했다. 때로는 좋아하는 곡을 백번 이상은 치면서 연습을 하였던 것 같다. 내가 만족할 정도 까지만의 실력이라서 자랑할 정도는 안된다. 그러나 힘들었던 순간마다 위로와 힘이 되었었다.
힘들었던 올 한 해 동안 내가 정말 건강하게 일어설 수 있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거의 매일 일상의 루틴이 된 것처럼 바닷가를 걷고 피아노를 쳤던 것 같다.
우리 집은 피아노를 샀을 때부터 항상 뚜껑을 열어 두었었다. 우리 아이들이 피아노를 보면 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아노가 정말 낡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덕분에 나의 최애 악기가 되어 버렸다. 지속적으로 꾸준함을 잃지 않고 피아노를 연습할 생각이다.
내 동생이 도와주어 하장에 살 때 이백만 원을 주고 피아노를 샀었다. 작은 아이가 돐때였으니 삼십 년이나 우리 가족과 함께했다. 우리 집의 터줏대감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우리 집에 있는 물건 중 삼십 년 동안 이사 갈 때마다 끌어안고 다녔던 것은 피아노가 유일한 것 같다. 동생이 소리도 들어보니 좋다면서 구입해 주었기에 내겐 정말 소중했다.
같은 맥락으로 내년에는 그림을 배워 보고 싶다. 나이 들어서 배움을 시작해도 집중력과 몰입 때문에 진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악기만큼은 어릴 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그런데 지난 일 년은 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습관처럼 지속적으로 연습을 하게 된다면 실력이 조금씩은 늘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아지기에 노력과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만 있어도 삶의 질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서서히 스며드는 그런 느낌이 정말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찬양을 할 때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날마다 깨닫기에 늘 감사하다. 그래서 한 곡 한 곡 익힐 때마다 작은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는 날동안 주님을 찬송하는 사람 되려면 혼자라도 찬양을 하는 시간을 갖고 그런 자리에 항상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찬양이 피아노를 향한 나의 원동력이 되었기에 가능했었다.
단독주택에 살고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피아노 앞에 편안한 마음으로 앉곤 하였다. 이제 내겐 피아노가 없는 공간은 죽은 공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피아노가 좋아져 감사하다.
아이들을 위해 사 준 피아노가 나를 위한 것이 되어 버리다니 내 생애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무언가 쓰임새라는 것이 일생을 견주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니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가 여전한 효용성을 갖고 내 곁에 있어서 나를 늘 행복하게 해 주어 바라볼 때마다 감격스럽다. 현찰을 주고 구입하였기에 그 당시에는 정말 큰 금액이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값어치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가치가 건재하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하나님 앞에 나의 피아노 같은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나이 들수록 더 멋지고 아름답고 조화롭고 빛나는 소리를 내는 악기와 같은 헌신자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 보게 만들었다.
성경인물 중에는 모세, 다니엘, 에녹, 바울, 사도 요한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피아노와 같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나의 피아노 앞에서 피아노 현의 떨림처럼 평범하지만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예배의 자리에 늘 나아 갈 수 있는 그런사람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또 우리 아이들을 바라 볼때도 조바심치지 말아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피아노의 효용성처럼 우리 아이들이 전생애 속에서 주님앞에 쓰임 받는 자로 붙들어 주시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