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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 둥글

걸상 2023. 10. 22. 01:02

오랜만에 바닷가 모래 걷기를 하였다. 친한 언니는 먼저 가서 걷고 있었기에 남편과 작은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서둘러 나갔다. 언니와 함께 걸으시는 분을 소개받았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또 하나의 의지의 한국인이었다.

평생학습관에서 오카리나를 배워 이젠 동호인들과 발표회도 하신다고 한다. 처음 오카리나를 배우려고 갔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셨단다. 거의 육 개월을 그냥 왔다 갔다만 하셨단다. 육개월동안 남이 하는 것을 보면서 천천히 악보와 음을 익힌 후 결국 완전히 배울 수 있었단다. 하모니카도 그렇게 배웠고 이젠 팬 플루트를 배우신지 일 년이 되셨단다. 정말 놀랍다. 악기는 어렸을 때 배워야 한다는 나의 편견을 무참히 깨 주신 분이시다.

모래밭 걷기를 알게 되어 걷고 싶은데 시내와 떨어진 동네에 살고 있고 차도 없어 난감했단다. 친구의 집까지 걸어와 차를 얻어 타고 가서 걷기를 시작했단다. 차를 얻어 타는 것이 미안해 검색을 해보니 새벽 7시 십 분에 바닷가에 도착하는 시내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차를 타기 위해 일찍 시내까지 걸어와서 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오신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 걷기 동호회에서 이십 킬로씩 걸으셔서 그런지 내가 좇아갈 수 없는 속도로 걸으셨다. 걷다 보면 배고파서 음식을 챙겨 배낭에 가지고 오신단다. 악기를 배우신 것도 놀랍지만 걷기에 대한 집중과 몰입이 존경스러워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몸이 어디 아프신지 여쭈니 아프신 곳이 없다고 하셨다.

걷다 보면 모래 속에 감추어져 반짝 거리는 것들에 저절로 손이 간다. 나무도 조개도 돌도 파도의 집중과 몰입에 가까운 공략에 의해 둥글둥글해진 것들이어서 더 소중하다. 이분이 악기를 배운 것도 쉬지 않는 펄펄 살아 지속적으로 뛰는 심장처럼 그런 꾸준함과 지속적인 몰입의 산물임을 안다. 바닷물에 깎여 뾰족한 것들이  둥글 둥글해진 것은 그냥 바닷가에 있었기 때문이어서 수동적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분을 보면서 결국 우리를 깎게 하는 세파보다 자기 안의 동력이 더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나를 다듬는 것은 순전히 나의 동기가 중요함을 말이다. 스스로에게 집중하여 내가 원하는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해야할 과제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