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상 2023. 9. 13. 02:01


프랑스빵 무엘르가 딱 내 취향이었다. 늘 만들어 보고 싶었다. 드디어 오늘 거의 성공한 것 같다. 빵조차도 탄 것이 싫었다. 오래 굽는다는 것은 결국 높은 온도의 오븐에서 태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발효도 오버되는 것이 싫었다. 오버되면 구수한 맛이 사라지고 빵에서 쓴맛이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적당히 발효하는 것이 관건이고 또 적당히 구워져야 하기에 그 시간이 정말 중요함을 알기에 요 며칠 적은 양의 반죽을 만들면서 계속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 드디어 작은 아이가 맛을 보더니 “맛있다”라고 평가해 주었다. 고기도 아니고 또 달지 않는 빵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벌써 두 개나 먹었다. 밥 같은 빵이어서 정말 담백하고 내 앞의 테이블에 빵이 있으면 계속 손이 가는 천사 같은  순수한 맛의 빵이다.

오로지 물과 소금, 드라이 이스트와 우리밀가루만 들어갔는데 정말 딱 알맞은 맛의 구수하고 은은한 단맛이 느껴지는 맛있는 빵이 되었다. 남편이 만든 느티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으니 빵이 더 먹음직스럽다. 무엘르는 다이어트식이어서 내게는 정말 매력적인 빵이었다. 발효가 이루어졌기에 끝 부분도 둥글둥글 자연스러운 모양이 정감이 있어 그 아름다움에 빠져 들게 만든다.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크게 만들면 한 개를 다 먹는 것이 부담스러워 작게 만들었다. 질감의 차이가 살짝 나지만 그래도 만들수록 만족스러워 고무적이다. 반죽의 양이 너무 많으면 사람이 먹어야 하는 빵을 만든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기계적으로 만드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양이 많아지면 너무 힘들어 일에 치여서 정갈함이나 만드는 사람이 가져야 할 음식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 부족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많았었다. 만드는 일에만 급급하여 음식을 다루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반죽을 조금씩 남겨 새 반죽에 넣어 주었더니 더 부드러운 빵이 되었다. 마치 요구르트를 만들 듯이 남은 요구르트에 새우유를 넣어서 계속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헌 반죽만으로 발효를 하면 확실히 고소함에 차이가 있었다. 반죽을 할 때마다 정량의 이스트를 넣어 주면서 조금 남겨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지난번 반죽을 함께 넣어 반죽을 하였더니 발효도 풍성하게 되고 빠르기도 한 것 같이 느껴졌다. 발효가 잘되어서 맛도 깊어 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칼집도 한꺼번에 해주었는데 오븐의 공간이 적어 오래 방치되었다가 두 번째로 오븐에 들어간 것이 훨씬 많이 벌어지면서 구워져 신기했다. 발효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스프레이로 물을 흠뻑 뿌려 준 후 구워야 한다. 헌 반죽을 사용하니 빵반죽하기가 이렇게 쉬운데 ‘왜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게 하셨을까?’를 계속 생각하며 묵상하게 되었다. 날씨도 더운 나라여서 발효도 잘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심판의 엄중함때문이까? 도적같이 오는 심판의 속도 때문일까? 집중력 때문일까? 우선순위 때문일까? 경각심을 갖기를 원하셨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