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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김치, 실파김치

걸상 2023. 8. 11. 21:32

작은 아이가 “부추김치가 없냐?”라고 물어 왔다. 부추김치를 만들어 주려고 마트에 갔더니 한단에 9,900원이었다. 비바람 때문에 갑자기 채소들의 값이 다락같이 올라가 있어 사 올 수가 없었다. 비가 많이 오면 마트에도 제대로 못 가게 될 것만 같아 다른 반찬거리만 정말 많이 사 오고 말았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져 남편이 아침 일찍 밭에 가서 부추를 잘라 왔다. 오전 내내 열심히 부추를  다듬어 부추김치를 만들었다. 오후에는 장독대에 있던 부추도 잘라와 오늘만 두 번이나 부추김치를 만들었다. 마트에서 사서 하면 다듬어져 있어서 한꺼번에 많이 담글 수 있는데 밭에 있는 부추를 잘라서 만들면 손만 분주할 뿐 양도 적다. 그래도 직접 키운 것이어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감사했다. 저녁때가 되니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벌써 맛있게 익어 있었다. 돈가스를 만들어 함께 먹도록 주었더니 작은 아이가 정말  맛있어하였다.

“엄마 내가 더 오래 있게 되어 좋지?” 하고 물어 온다. “응” 집에 와 지내니 아이가 좋은가 보다. 사실 외국에 살다 오니 음식조차도 스스로 챙겨야 했고 또 무언가 할 일을 정해두고 쉬는 시간이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나 싶다. 큰 아이도 동생을 되도록 내 버려두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내가 수업을 준비하여 나갈 때도 누군가 집에 있다는 사실이 정말 든든했다.

대장 내시경을 하기 위해 흰 죽을 먹고 있는데 아빠가 드시는 부추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단다. 요즈음 깻잎김치와 무채김치, 상추 겉절이등 여름김치를 계속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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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함께 운동을 하고 있어서 꼭 같이 밥을 먹곤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부추김치와는 또 다른 알싸한 맛의 실파김치도 먹고 싶단다. 홈 플러스에 갔더니 다듬어진 작은 묶음(엄지와 검지로 만든 동그라미 안에 들어갈 정도) 한단이 7,490원이었다. 정말 비쌌지만 ‘오랫동안 집을 떠나 살면서 얼마나 먹고 싶었던 것이 많았겠나!’ 싶어 두 단을 사 왔다. 실파는 이 시점에 고기보다 값진 식재료인 것이다. 무채김치와 같이 만들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김치와 고기구이면 반찬이 다 되었다’ 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밑반찬까지 챙기게 된다. 제법 채소반찬을 잘 먹어 주니 더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작은 아이가 “엄마가 참치캔으로 음식을 만들어 준 적이 별로 없었다”는 말을 해주어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릴 적 일도 다 알고 있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격리하고 있었을 때 배달 해 주었던 참치김치볶음밥이 정말 맛있었단다. 다시 먹고 싶어 참치캔을 샀는데 참치캔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아 아직도 만들어 먹지 못했단다. 혼자 밥을 해 먹으면서 살아 보아서 그런지 함께 밥을 먹으며 어릴 적에 먹었던 것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어 기뻤다. 강조하여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식재료의 선택에 있어서 엄마의 의도를 헤아려 따라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스스로 연명하기 위해 밥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 아이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름의 터득한 조리법을 나에게 팁으로 알려 주곤 할 때면 그 신박함에 놀라게 된다. 미국산 스테이크 고기를 사서 소금을 살짝 뿌리고 채선 양파와 다진 마늘, 파에 30분 정도 재웠다가 구우면 고기의 맛은 손상되지 않고 본연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불고기맛을 낼 수 있단다. 불고기로 재워 판매하는 것들은 너무 달아서 매력적이지 않단다.

여름반찬들을 만들다 보면 늘 엄마 생각이 난다. 방학 때면 오랜만에 가족이 만나게 되어 엄마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 음식을 만들어 주었던 순간들이 기억나서 그런 것 같다. 곤로를 가운데 두고 튀김을 만들어 가장 따뜻하고 맛있을 때인 만들자마자 돌아가며 먹게 해 주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방학이 되어 집에만 가면 살이 쪄서 서울에 오곤 했었다. 닭을 키우셨었는데 엄마만의 독특한 조리법으로 닭조림을 만들어 주곤 하셨었다. 이젠 엄마의 방법을 나도 따라 해보곤 한다.

‘엄마가 때로 내 삶과 생각의 기준이 되어 주셨구나!’ 싶어 질 때가 많아 참 신기하다. 아주 소소한 영역에서도 말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음식에 대한 올바른 생각들을 심어 준 것처럼 말이다. 엄청 강한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녀들에게 져 주셨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사는 날 동안 그렇게 세련되게 대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탄력성이 있었고 지혜로워서 우리와 예의 있게 관계를 맺어 주신 것이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