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상 2023. 7. 31. 21:00

모임에서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음식점에 갔었다.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을까?’ 싶었던 곳이었다. 무조건 예약으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생각나는 여름 반찬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밀가루에 무쳐 쪄낸 후 만든 고추무침, 가지무침, 피감자조림과 여러 가지 나물볶음이 그랬다. 향토 음식이라며  구역식구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곤 했었던 엄마의 밥상이 그리웠다. 엄마와 아버지께서 살아계신다면 묻고 싶은 일들이 많아지는 요즈음이어서 더욱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반찬마다 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싱겁게 느껴지는 반찬과 짜게 느껴지는 반찬과 적당하게 느껴지는 반찬들이 뒤섞여 있었다. 만든 사람이 서로 달라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이 일정해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수채화처럼 전체적으로 일정한 농도의 간이 세련된 맛이라고 느껴진 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집은 수채화와 유화가 뒤섞여 그려진 느낌 같았다.

남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된다. 다 큰 우리 아이들이 와 끼니를 챙길 때마다 느끼는 어려움 때문에 음식점에 가면 맛을 분석하는 버릇이 생기게 된 것 같다. “왜 이 집은 이렇게 손님이 많은 것일까?”를 늘 따져보게 되곤 한다.

며칠 전에 먹었던 막국수집은 전체적으로 밋밋한 간이어서 스스로 식초나 소스로 자신만의 간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했다. 나처럼 싱겁게 먹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부족하면 가져다 먹을 수 있었던 백김치와 열무김치로 간을 충분히 맞출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그 더운 날에 메밀 전을 최대한 얇게 만들었는데 간도 오로지 김치간만 느낄 수 있게 심심하여 젓가락이 자꾸 가게 만들어서 인상적이었다.

때로 맛 자체보다는 열정을 다해 만들었을 공력을 늘 가늠해 보곤 먹기 전에 먼저 감동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이 오롯이 느껴져 무조건 맛있게 여겨질 때가 많다.

엄마가 해준 음식들은 내 입에 딱 맞았었는데 요즈음 내가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왜 그렇게 자신이 없는지 모르겠다. 문득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그 육개장맛을 나는 낼 수가 없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단맛과 짠맛이 절절히 섞인 엄마의 찰밥도 그리운 음식 중의 하나다. 딱 떨어지는 그 맛을 내고 싶은데 갈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나만큼 많은 양념을 갖추어 놓은 것 도 아니었는데도 엄마는 요리에서 만큼은 늘 자신감이 넘치셨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