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코끝이 시큰해져 왔다.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엄마와 함께 했던 날이 여름날의 꽃처럼 그렇게 짧은 순간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한 감기를 한 주간 내내 앓았다. 신년회 모임도 있어서 빨리 낫고 싶어 열심히 밥을 먹고 약을 먹으면서 몸관리를 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앓아야 낫는 것임을 깨달았다.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에 씻으려고 하니 집안이 너무 추워 을씨년스러웠다. 안방만 빼면 집안 구석구석이 동굴 같아서 자칫하다가는 감기가 도질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7,000원을 내고 옷을 벗고 안에 들어가 먼저 비누를 칠한 샤워 수건으로 몸을 씻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랑 똑같이 생긴 어르신이 엄마와 똑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깜짝 놀랐다. 머리에 샴푸를 바르고 큰 빗으로 하염없이 빗어 내리는 일을 반복하시는 것이었다. 하얀 피부와 몸의 뒤태며 머리의 길이감도 하얀 정도도 70대의 우리 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 “등을 밀어 드리겠다”라고 하니 “벌써 밀었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정말 오랫동안 엄마와 함께했었던 추억의 공간임을 깨달았다. 처녀시절부터 결혼하고 나서도 함께 얼마나 많이 왔었는지 모른다. 주마등처럼 여러 가지 그림들이 머릿속을 확 지나갔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얼마나 짧았던 시간이었던가!‘ 싶어졌다. 또 우리 아이들과의 함께 할 시간과도 견주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위해 엄마가 외할머니처럼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 던 큰 아이의 말이 늘 내 마음속을 울리곤 한다. ”엄마가 빨리 돌아가시면 너무 슬플 것 같다”라고 말하곤 했었다. 큰 아이의 말대로 존재 자체로 우리 부모님은 늘 내겐 항상 큰 울타리 셨었다. 지금 생각해도 고아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오래 살아 주신 것이 감사할 뿐이다. 며칠 전 안산 언니와 통화를 하며 “우리도 아이들을 위해 숙제를 해 나가듯이 엄마처럼 건강을 가꾸며 살자고 말했었다.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 후 음료수도 사 먹어야지’ 하고 왔었는데 혼자여서 내키지가 않았다. 엄마랑 함께였다면 분명히 무언가를 마셨을 것이다. 목욕 후 마시는 음료수는 뭐라도 환상적인 맛이었었다. 눈물을 훔치며 그리움을 삭이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함께였기에 더 즐거웠었던 순간을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 쌓인 목욕탕이 여전히 우리 동네에 건재해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었기에 그 소중함과 귀함을 더 잘 아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 또 감사하다. 엄마와 딸이 목욕을 같이 하는 것은 그 친밀감이 얼마나 큰 것임을 살아 갈수록 더 깊이 알게 되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시집살이도 엄마가 한동네 곁에 사셨기에 넉넉히 더 잘 견디어 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나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 모습 그대로 나의 믿음도 사람됨도 인정을 해주셨기에 늘 당당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엄마 됨이 어른됨이 어떤 것인가를 사유하며 배우고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부족함때문에 부모님 곁에 더 오래 살도록 허락하신 것인지도 모르겠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와 함께 했었던 소소한 일상이 마치 며칠 전의 일이었던 것처럼 늘 생생하고 선명하게 느껴진단다. 오랜만에 큰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명절이 아닌 평일에도 저녁밥을 하기 힘들 때나 싫어질 때면 늘 우리 온 가족을 초대해 주셨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는 여러 가지 일들을 감당하느라 여전사처럼 살았어서 정말 힘들었던 시절도 참 행복하게 순간순간을 살 수 있게 해 주었던 원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