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노을이 너무 아름 날이었다. 친한 분들과 저녁을 먹고 갈남 항에 갔었는데 그곳이 노을 뷰 포인트이었다. 수평선180도와 주변의 양쪽 산까지 거의 270도 이상을 노을이 시시각각으로 정열적인 붉은 색부터 연한 보라와 분홍, 최고의 아름다운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메라가 다 담아 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찍지 않았을 정도였다. 또 그 자리에 노을이 없어지는 순간까지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굽이를 돌때 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늘에서 펼쳐지는 고흐의 민트색은 산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 황홀해서 오늘은 어떨지 궁금하여 또 가보고 싶었는데 남편이 출장을 다녀와서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무리일 것 같아서 가지 못했다. 어제 찍어 온 그림을 보면서 노을을 묵상했다. 인생을 하루로 친다면 나는 노을 즈음일거라 생각된다. 언젠가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 가는 중 굴다리를 지나는데 가로수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 날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황혼의 시기에 단풍의 아름다움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며 공감을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사람이 과연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품었었다. 살아갈수록 자기 중심적인 어린아이처럼 되고 이기적으로 바뀐다는데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온종일 묵상을 해 보았다. 해가 지는 자리가 노을이니 해를 하나님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또 삶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간관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존재자체로 아름다운 단풍처럼 그럴 수 없는 ‘늙은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에 대한 묵상의 결과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정의와 존중과 따뜻함과 예의바름이 드러남 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곁에 있는 친구, 부모님, 가족에게 잘 드러날 것 같아 자신이 없어진다. 인생은 다각도로 다양하게 평가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한다. 노 할머니와 우리 부모님의 삶을 곁에서 보아 왔기에 선뜻 자신있게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움은 객관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괴팍하지 않은 노인의 삶이 내게는 없기를 바라는 것이 더 옳은 일 같기도 하다. 자식에게 부담이나 어려움을 주지 않은 어른 일때까지만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노을 그림 앞에서 하게 된다. 신의 친구라 불렸던 사람들의 성품을 생각해 본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지만 살아있는 동안 고상한, 신사적인, 온유함, 깔끔함,부지런함, 등 인간을 수식하는 긍정적인 형용사를 붙여 불렸던 사람들을 떠 올려 본다. 또 톡쏘지 않음, 잔소리 하지 않음, 나지신만 옳다고 생각하디 않기, 말로 상처주지 말기, 등 부정적인 단어로 수식하는 성격의 목록을 만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