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2
아버지의 시선은 오랜시간 먼 곳에 머물러 있다. 그럴때면 눈의 깊이가 다르다. 사실 아버지와 안과에 갔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눈이 너무 깊이 들어가 있어 머신으로 눈을 검사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의사선생님이 손에 쥐는 조그만 것으로 눈에 가까이 대고 난 후 진찰이 가능하였다. 눈 아래 쪽의 속눈썹이 눈을 찔러 염증을 유발하여 눈꼽이 늘 생긴다고 하였다. 부모님의 삶을 관찰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많다. 쌍거풀이나 눈밑의 주름 제거도 가능한한 한 살이라도 어렸을때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눈 꺼풀이 말려 들어가 속 눈썹이 눈을 찌르기 전에 미리 미리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결국 사람은 죽어가는 달팽이와 같은 존재임을 절감한다. 성장을 멈춘 후 지속적으로 죽음이 진행되어 가는 육체임을 깨닫는다. 정말 오래 살 것 같은 느낌은 그냥 우리의 느낌일 뿐이다.
안과 대기실에서 관찰을 해보니 아버지보다 훨씬 젊은 할머니들이 다 시력이 제로에 가까웠다. 한 할머니가 처방전을 받아 가면서 “언제 또 와야 하느냐?”고 묻는다. 낫지 않으면 오라고 하면서 “언제 오셔야 하는지 적어 드릴께요”라고 답했다. 당신들이 사회적 동물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병원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인정해 주는 유일한 곳이 병원이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다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병원 순례를 한다. 처음에는 약을 다 먹지 않았는데도 팽개쳐 버리고 또 병원에 가는 이유가 이해가 안되었다. 의사선생님의 얼굴을 보아야 낫는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어 주고 당신의 존재를 존중해 주는 곳이 가족도 그 누구도 아닌 병원이다.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제일 답답했던 일이 병원에 못 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의 의료 제도가 너무 잘 되어 있다. 아버지는 아홉개의 알약을 한번에 다 복용하신다. 오늘은 아버지가 가장 두드러지게 두통을 호소하였다. 내일엔 내과 진료를 받는 날인데 왜 아픈지 물어 보아야겠다고 하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하루를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가 관건이다. 밤이 되면 ‘오늘도 잘 통과 했구나!’ 하면서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 하루 하루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쌓아가는 느낌이다. 어떤 날은 카페까지 순조로워 내일에는 잘 지내겠다 싶은 날은 또 복병처럼 숨어 있는 무언가가 툭 튀어 나와 앞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어서다. 익숙해 지겠지 싶다가도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야곱과 같은 아버지의 삶이 또 내 삶 이려니 싶어지곤 한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지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