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큰 아이에게는 지난 주에 오늘은 작은 아이에게 소포를 보냈다. 보내고 싶은 것들을 꾸려 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쿠키를 굽고 나면 꼭 아이에게 보내주고 싶어진다. 지난 주에는 쿠키와 사과,커피를 보냈다 아주 작은 통을 사용했었다. 오늘은 작은 아이가 탁구 라켓을 보내 달라고 하였다. 지난 여름에 탁구대회에 나가고 싶었는데 파트너를 못구해 못나갔었던 생각이 나더란다. 간절히 부탁하기에 “그러마” 하고 약속을 하였단다. 지난 번에 출발하기 전에 탁구 라켓을 가져갈지 말지 엄청 고민하였었다. 보내는 박스에 커피와 클렌징크림을 넣었다. 요청에 의해 무언가를 보낼 때마다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는 것이 참 즐거운 일임을 깨닫곤 한다.
지난번 큰 아이네 학교에 다녀 온 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아이가 안스러워 요청이 없어도 자주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무엇을 보내 줄지 늘 생각하게 된다. 작은 아이는 책은 검열을 받게 된다며 넣지 말라는 부탁을 하였다. 둘 다 최소한의 물건들만으로 살아가며 버티어 내는 삶이어서 물어 보고 거절하면 절대로 넣어 주지 않는 편이었다. 나는 나름 서구적이서 아이들이 해달라는 만큼만 해주는 편이었다. 큰 아이의 아팠던 친구가 지난 주일날에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자녀들의 세대가 얼마나 각박하게 살아 왔는지를 알기에 정말 가슴이 아팠다. 더 멋진 사람이 되려고 얼마나 애를 쓰며 공부하며 절제하며 살아 온 아이의 삶이 오롯이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큰아이가 무언가를 잘 챙겨 먹도록 뒷바라지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가슴 한켠이 찌릿하게 저리며 아파왔다. 우리 아이들이 집에 오면 되도록 자유롭게 실컷 잠자다가 놀다가 먹다가 가기만을 바라게 되곤했다. 나도 대학시절에 집에만 가면 잠만 잤었기 때문이다. 또 오롯이 혼자가 되었을때 얼마나 큰 두려움으로 살았는지를 알기때문이다. 무방비 상태로 실컷 잘 수 있는 공간이 집말고 또 어디있겠는가? 작은 아이가 “커피가 있냐?” 묻고는 있으면 보내 달란다. 아침부터 카페에 가서 커피를 볶았다. 어제 핸드 드립 커피를 너무 좋아하는 손님들이 오셨기에 커피를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의 짐에 원두를 넣어 주고 딱 이인분 정도의 양만 남겨 두고 수업에 갔었다.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오는데 손님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따라 모두 커피를 찾으셨다. 원두가 있는지 사고 싶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생강라떼를 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모두들 맛있다고 해 주셔서 감사했다.
어머님 집에도 갔었고, 빨래도 널고, 소포도 보내고, 장보기하여 수업도 하고, 친한 집사님 가게도 들었고, 손님도 맞이해야 했고 화분들도 들여 놓아야만 했던 촘촘한 하루였다. 큰 언니 만큼은 아니었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로를 해야만 했다.
큰 아이와 밤 늦게까지 카톡을 하였다. 친구를 잃은 상실감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눈물만 나온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아빠 잃은 상실감으로 자신도 한달은 울었다고 이제야 고백을 하였다. 큰 아이는 할 일이 너무 많은데도 손에 안 잡힌단다. 평생 함께 하고픈 친구였단다. 다른 친구들이 문상을 하고 간 후 정말 친한 친구들 셋만 남았는데 “이렇게 열심히 살아 무엇하겠는가?”라는 이야기를 하며 너무 많이 울었었단다. 건강을 놓치게 되니 다 잃어 버린다면서 말이다. 무심하여 있을 때 더 잘해 주지 못한 회한에 몸부림치게 되나 보다. 병상에서의 뼈만 앙상한 마지막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 완벽하게 살아 내려는 아이들의 그 마음과 처절한 몸부림을 알기에 정말 안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