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상 2019. 10. 18. 14:35

 

큰 아이가 갑자기 다녀갔다. 하필이면 내가 가장 바빴었던 토요일이어서 참 미안했다. 밤 열두시 즈음에 강릉에 도착하여 데리러 갔었다. 미리 음식을 만들어 놓을 짬도 없었다. 그래도 무채나물무침과 송이애호박채국을 만들어 주었다. 돈육훈제삽겹살을 먹고 싶다고 하여 사와서 에어 플라이로 구워주었다. 그리고 남편이 새벽시장에 가서 회도 사와 먹었고 친한 선생님이 준 쌈채소가 있어서 소고기 구이도 해 주었다. 보내고 나니 우리 동네 음식점에서 먹고 싶은 음식도 사 주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아이들이 다 커버려 마지막까지 안전한 보루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쉬기 위해 몇번이나 더 찾아 오겠나 싶어서다. 작은 아이도 주중에 직접 집을 찾아 다녔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허주를 택하여 이사를 하였다. 학교와 가까운 곳이어서 삶의 질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감사하다고 사진을 보내주었다. 둘 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름 잘 살아주니 참 감사했다. 이번 주에는 작은 아이가 가족 톡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청년부 목사님께서 올려준 글을 포함하여 신앙의 글들을 두번이나 올려주었다. 우리는 아멘으로 답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었다. 늘 뜨거운 아이여서 감사했다.

 

아이들이 인상깊거나 속상했었던 소소한 일상과 가슴 아프게했던 사건들을 단체톡에 올리고 속마음도 드러내어 주어 늘 감사하다. 문득 문득 잊어 버렸었다고 생각한 어릴적의 이야기를 하여 놀랄때도 있다. 부모라고 항상 완벽할 수 없기에 죄성으로 인해 주게 되었던 상처들이 커가며 말씀안에서 잘 아물어 주기만을 바라게 된다. 큰 아이는 특별히 교육 철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때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며 나의 어릴적과 아이들의 어릴적의 사건들을 반추하게 만들어 주곤한다. 어릴적에 형성되었던 삶의 흔적들이(이력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만드는지에 대한 무수한 철학적 고찰들을 하나씩 꺼내어 말해 주곤한다. 그것이 만화일때도 있고 드라마나 영화일때도 있어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다.

 

남편이 카페 뒷쪽에 선반을 달아 주어 정리 정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일사천리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 못 되어서 주방쪽의 선반도 함께 뒤져 가며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우연히 내가 기도 제목을 적어 놓은 노트를 찾아 읽게 되었다. 놀랍게도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음을 알게 되어 감사했다. 우리 아이들을 향한 앞으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 제목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며 대대로 주를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 제목이었다. (시22:30) 아이들을 향한 나의 기도는 항상 말씀에 근거한 기도제목을 정하여 적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여전히 인간적인 성공보다는 한사람의 온전한 크리스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직도 가장 큰 소원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TV를 보면서 남편은 멸치를 다듬고 있었고 나는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가을이 되어서 그런지 센치멘탈해져 여행도 가고 싶고 자꾸 눈물도 난다고 하여 막 웃고 있었다. 인터넷 에서 우울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힘들다 여행가고 싶다”라는 말이 우울하다는 말일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기에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여기는 것이 살짝 걱정스러웠었다. 작은 아이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통화를 한 후 카톡으로 대화를 하다보니 주일날 부터 지금까지 게임을 일분도 하지 않았단다. 너무 바빠서 할 시간이 없었단다. 참 신기했다. 게임코치로 그곳으로 간 아이여서다. 남편을 놀리며 웃던 나도 울고 싶다던 남편도 울고 말았다.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붙드심이 너무 놀라워서다. 우리로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아이를 통해 느끼고 깨닫게 하신다고 서로 고백 할 수 밖에 없었다. 말씀으로 또는 상황과 때를 따라 당신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아이를 다듬어 가시니 참 감사하다. 십이월의 시험이 끝난후에나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같단다. “현실에 발붙였네 이제” 라며 큰 아이도 놀라워 하였다. 아이가 열정적으로 자기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참 기특하다. 누나가 열정을 다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었기에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실천하게 된 것 같아 또 감사했다. 이순간 의지의 화신이 되게 붙들어 달라(시21:1,2)고 노트에 적었던 내용대로 다시 기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