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어머니의 팔순 준비를 하느라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오후가 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었다. 한잠 자고 일어났더니 남편이 밥을 차리고 있었다. 국을 데우고 찰밥도 챙기고 있었다. 큰 아이는 집에서 먹는 마지막 끼라면서 맛있는 것을 만들어 달란다. “뭐해줄까?”물으니 달걀말이가 먹고 싶단다. 카페에서 청계란을 가져다가 만들어 주었더니 배불러 많이 못 먹을 것 같았는데 역시 집밥이란다. 커피를 마시고 이제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교수님께서 “공부에 헌신해 주어서 좋다”는 말을 해주셨다고 자랑을 하였다. 임용시험 공부를 할때처럼 새벽같이 도서관에 가서 밤 열두시까지 공부를 하는 것을 과제로 다 확인 할 수 있으셨던 것 같단다. 그 말이 기특하기도 하고 도전이 되었다. 크리스챤이 아닌 교수님이신데 헌신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일상중에 내가 헌신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보통 교회에서의 직분을 통해 하는 사역에 헌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었다. 어쩜 우리는 거의 모든 영역에 헌신이라는 단어를 써야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악기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게 되는 연주가도 그렇게 헌신이 필요한 것 같단다. 결국 모든 것에는 거짓없는 진실함이 통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공부나 악기가 갑자기 잘하게 되는 일은 없음을 깨닫는다. 시간을 들인 만큼 성과가 나기 마련인 것이다. 역시 철학을 공부하는 아이여서 언어가 남달랐다. 더 선명하게 정의 되어지는 단어들을 정확하게 꼬집어 말해주었다. 항상 마음을 헤아릴줄 아는 아는 아이였었다. 한학기 사이에 풍성함과 간결함 모두를 만족시키는 언어능력을 더 많이 갖추고 나타난 것 같았다. 교권붕괴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였는데 우린 졸지에 철학자와 철학용어들에 대해 그들의 견해들에 대해 새롭게 듣고 알아가게 되어 기뻤다. 그동안 읽은 텍스트 중에 가장 매력적이고 어려운 텍스트는 성경말씀이라고 고백해 주어 감사했다. 쉽고 간결하고 철학적 소양으로 복음을 해석하며 성경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은 결국 인간성 이해이기때문이다.
그냥 방향성만 가지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었는데 이렇게 학업에 뛰어 들게 될 줄 몰랐었단다. 와 보니 자신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재능이 있는 줄을 알게 되어 감사하단다. 대화를 통해 아이에 의해 주님의 아름다운 관점을 더 고급지고 세련된 사유의 결과물들로 규정된 정리들에 나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역시 우리의 존재감과 가치관이 주안에서 잘 정립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니 오늘 선포된 주일말씀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과 맞닿아 있어서 참 좋았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그 생각이 온전한 가치관으로 정립되었을때만 올바로 행동하게 됨을 깨닫게 된다.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서도 나의 존재 위에 주님의 은혜가 늘 흐르도록 해주심을 경험하였기에 감사하다. 자칫 나약해지려고 할 때 마다 말씀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허락하시어 고치고 행할 수 있도록 경계하시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