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달력을 꺼내보며
마흔쯤 살면 다 살았을 것 같은 생각을 하였었던 때가 있었다. 남편이 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찍어 확대해 보면서 자기 얼굴이 이렇게 까매진지 몰랐단다. “당신은 남들에 비하면 여전히 하얗다”고 말해주었다. 펄펄 살아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았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싶어진다. 여름방학때 부터는 하루 하루를 지우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두 주 만에 다이어트 할 수 있다는 인터넷글이 눈에 확 띄어 날짜를 헤아려 보니 보름만 지나면 새해를 맞이한다. 남자들이 시간의 흐름에 더 민감해 하는 것 같다. 무얼하고 긴 세월을 보냈나 싶어지는 것 같다. 남편이 자려고 누웠는데 속이야기를 건네왔다.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은 강인함이 멋스러웠었다. 이젠 울기도 잘한다. 내가 퇴근이 더 늦어져 남편은 옛날의 나처럼 집돌이가 되어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영화 <사도 바울> 보면서 나는 큰 아이와 다르게 나이 든 바울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꿈 이야기를 하면서 회한에 젖는 모습이 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뜻에 민감하여 공동체를 향해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저절로 고개 숙여지는 그 카리스마앞에 머물렀던 누가의 애절한 사랑이 참 귀해보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그 간절함이 감옥속에서의 삶도 귀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각색이겠지만 젊은 누가의 의견을 따라주는 바울의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영화속에서 자신없어 하는 바울을 설득하여 그 바울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 편지를 보내는 누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고집을 내려 놓으실 수 있는 진짜 어른이 있을까?’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신앙인으로 긴 세월을 살아 온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