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풍경
박남준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다.
나를 빙그레 웃게 만들어 준다.
소박한 시인의 삶이 저절로 그려져서다.
갑자기 행복해져 왔다.
그리고 호박죽이 그리움에 사무칠 정도로 먹고 싶어졌다.
사먹는 것 말고 직접 끓여 먹어 보고 싶어졌다.
마음이 힘들어지면 가장 편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은 역시 책이다.
가끔은 스스로 나만의 동굴을 만든다
시집을 들었다.
위로가 넘친다.
친구 이상의 친근감으로 인해 벌써 마음이 풀어져 있다.
그의 <겨울 풍경>이라는 시가 올 겨울과 정말 많이 닮아 있어 적어 본다.
겨울 풍경
겨울 햇볕 좋은 날 놀러 가고
사람들 찾아오고
겨우 해가 드는가
밀린 빨래를 한다 금새 날이 꾸물거린다
내 미는 해 노루꽁지만하다
소한대한 추위 지나갔다지만
빨래줄에 널기가 무섭게
버쩍 버쩍 뼈를 곧추 세운다
세상에 뼈 없는 것들이 어디 있으랴
얼었다 녹았다 겨울빨래는 말라간다
삶도 때로 그러하리
언젠가는 저 겨울빨래처럼 뼈를 세우기도 하고
풀리어 날리며 언 몸의 세상을 감싸주는
따뜻한 품안이 되기도 하리라
처마 끝 양철지붕 골마다 고드름이 반짝인다
지난 늦가을 잘 여물고 그중 실하게 생긴
늙은 호박들 이집 저집 드리고 나머지
자투리들 슬슬 유통기한을 알린다
여기 저기 짓물러간다
내몸의 유통기한을 생각한다 호박을 자른다
보글 보글 호박죽이 익어간다
늙은 사내 하나 산골에 앉아 호박죽 끓인다
문밖은 여전히 또 눈보라
처마 끝 풍경 소리 나 여기 바람 부는 문밖 매달려 있다고
징징거린다
뼈를 세우거나 풀리는 겨울철 빨래처럼 그렇게 마음이 순간 순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변덕이 심하지 말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둔감해 지는 피부처럼 마음도 그렇게 변해가면 좋을 것 같다.
징징거리는 풍경에 또 감정이 이입된다.
가족들에게 만은 늘 징징거리는 날 보는 것 같아서다.
가족속에서는 늘 위로가 넘친다.
나는 아무일도 없었던 듯 그렇게 또 일상을 만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