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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후

걸상 2017. 11. 21. 10:55

 

아이를 두고 떠나기가 아쉽다.

무언가 더 챙겨주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제 저녁을 먹은 후 사 온 드립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너무 맛이있다.

최대한 아껴서 마시고 있다.

 

잘 살겠거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아이의 모습이 내겐 안스러움의 극치점에 다다른 것 같다.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이리라.

이전에는 이사만 해주고 남편차를 타고 내려가곤 했었는데 같이 잠을 자니 개수대며 목욕탕도 살피게 되었다.

주방 살림을 정리해 주고 목욕탕 청소외에는 해줄 것이 없었다.

결국 자기가 스스로 정리하여 살아야하니 그대로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행거가 무너져 힘들었었다.

언젠가 여초선생님께서 오셨을때 행거가 무너져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의 남편이 생각난다.

사람이 한 일이니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도 행거가 무너질때면 늘 절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싸구려여서 그런 것 같단다.

다시 살때가지 임시방편으로 기대 놓았는데 영 불안하다.

필요한 것들을 챙겨본다.

급한 것은 택배로 보내 주어야할 것 같다.

고등학교때 까지는 엄마가 픽업해주어서 차비도 필요없었는데 대학교에 가니 움직이는 모든 것이 돈이라고 말했었다.

그때는 용돈달라고 말이라도 했었을텐데 이젠 스스로 자기 관리를해야하니 어른이 다 되었구나 싶기도 하다.

남편이 책장도 하나쯤 만들어 주었으면 싶어 길이를 재었다.

 

고칠 것이 많아서 관리사무소 소장님을 기다리다 보니 늦어져 어차피 오늘 카페문을 열지 못할 것 같아 오늘 중으로만 내려 가기로 했다.

 

두세시쯤 TV를 고치는 기사님이 오신다니 또 기다려야 한다.

 

있다보니 궁금하면 자기 교실에 와보라고 하여 간단하게 귤과 도넛을 사서 교실에 가보았다.

졸업후 강사시절 큰 아이가 맡은 삼척의 첫번째 교실을 가 본 후 처음이었다.

철철이 환경정리며 바삐 움직였을 일상의 공간이 낯설지 않았다.

큰 아이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궁금하였었는데 이젠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를 한바퀴 돌며 구경을 하였다.

이년이 넘었음에도 오면 바쁘게 집으로 돌아 가기에만 급급했었다.

참 무심했구나 싶다.

 

오는 길에 나처럼 엄마가 서울에 딸을 보러 온 듯한 모녀를 보았었다.

대화 중 내려가서 해야 할일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들었기 때문이다.

두 모녀가 애인과 같은 포즈로 두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아이가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대편쪽에 자리가 나서 앉았는데 나라면 이글거리는 엄마의 눈길이 버거울 것 만 같았다.

늘 무심한 듯한 내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중간쯤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적당히 서울과 멀어서 스스로 자립 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다.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 하지 않았던 나의 무심함은 나의 바쁨도 한 몫을 했다 싶다.

영양사,요리강사,시할머니,친정,카페,교회등 늘 나의 일이 넘친 탓도 있다.

아이도 어른이니 관계가 넘치지도 않아야 하지만 모자르지도 않아서 꼭 필요한 일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리라 새삼 다짐해 본다.

 

아이 방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만들었다.

반찬은 없지만 밥까지 해주고 가니 마음이 훨씬 편했다.

살짝 넓어졌는데도 훨씬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어 감사하다.

지난번 방에서는 화장실에만 가면 폐소공포증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퇴근하면서 암막커튼이 왔다며 들고 왔다.

같이 커튼을 달고 나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엄마 된 나는 결코 안전한보루가 되어 줄 수 없음을 절감한다.

아이에게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항상 멀리서 기도해주는 사람일 수 밖에 없음을 또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