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 보다 나이들면 딸과 친정엄마 사이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서로 서로 더 조심하여 끝에 할 말을 하지 않는데 딸과 친정엄마는 속에 쌓아 두는 것 없이 말을 다 하다 보니 더 힘들어 지는 것 같다.
어찌보면 딸에게는 그렇게 투정 부려도 된다고 생각해서 나오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싶은 것도 사실이다.
며느리였으면 억울해도 아들을 생각해서 참고 하지 않았을 말들을 말이다.
부모님곁에 살아보니 곁에 살고 있지 않으면 짓지 않아도 될 죄를 늘 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지난 명절에 가족예배를 드리면서 언니가 했던 고백에 공감이 갔다.
친정부모님이 칠년 전에 언니곁으로 이사를 가셨기에 다 잊어버렸었다.
가까이 살기에 부모님의 날 향한 기대가 많이 있었지만 나도 나름 바빠서 부모님의 기대만큼 못해 드리니 늘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 자력으로 사는 훈련을 하세요.
늘 충고만 하는 딸이었다.
근무하고 있으니 미리 말해주지 않으면 못 도와드린다.
119에 신고하여서 급하면 병원으로 가시라.
언니들이 늘 나보고 엄마께 잘 해드려라.
자주 찾아뵈라.
늘 잔소리를 하였었다.
부모님께 나만 나쁜 딸이었다.
우아하고 멋있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꼭 필요한 일,또 큰 일이 생기면 결국 곁에 있는 자식이 다 감당 해야 할 일이다.
병원가는 일, 입원하시면 같이 자야 하는 일,명절에 언니들이 못 오면 늘 안절 부절하여 전날 음식재료와 과일 넣어 드리는 일...
명절 당일이면 섭섭해하지 않으시도록 시집 눈치를 보면서 점심때는 꼭 친정을 가야만 했다.
급하게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였었던 순간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일이 넘쳐난다.
언니의 부탁대로 하였었는데 나만 예의 없다고 욕을 먹고 고생한 적이 있었다.
딸이라서 당신들의 토라짐을 그대로 드러내시기에 울며 운전하였었던 적도 많다.
내가 생각해도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았지 ?>싶어진다.
어떻게 넌 잘 참았니?
하고 물어 왔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이 더 건강하셨고 나름의 자존감이 높으셔서 잔소리도 먹혔었다.
젊으셔서 감정에 탄력성도 있으셨다.
오히려 나는 부모님 곁에서 더 많이 누린 것도 사실이다.
<직장을 다니니 피곤하지? 온 가족이 와서 저녁밥을 먹고가라!>고 하신 적도 많이 있었다.
통화를 해보니 이젠 아집과 집착과 피해의식만 남으신 것 같아 안타깝다.
삶의 다양성이 떨어지시니 당신 생각이 옳고 전부 다인 것처럼 생각하셨다.
진실을 대함보다는 당신의 서러움이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으시니 언니가 오죽 답답하겠나 싶어진다.
바쁜 언니가 일일이 따라 다닐 수도 없고 요양원에 가시는 것 보다 두 분이 함께 사시니 행복 일 수도 있으실 텐데...
삶은, 인생은 결국 고행길이구나 싶다.
더 잘 준비되어진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오시길 기도한다.
아들의 자리가 크다고 늘 남편은 말하곤 한다.
조심스러움이 있어야 하는데 이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조심스러움이 없어지는 관계를 더 이상 만들지 않으리라'
아니 '가까워질수록 상처되지 않게 더 조심스럽게 말해야지'하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