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남편

걸상 2017. 3. 15. 13:08

우연히 같이 본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가 마치 자기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단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모두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주인공은 <그래서  처신함에 있어 조심스럽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좋은>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된다.

누구를 위한 좋은 일인지..늘 의문을 던져 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하나님 편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겉모습은 늘 강해 보이나 늘 마음이 약한 편이다.

부모말씀에 순종하며 살아 온 효자답게 여리고 여린 어린 순 같은 구석이 있다.

수학선생님 특유의 논리정연함을 인정하는 뇌구조 때문 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기에 중심에 주님을 의지 하기에 가능했으리라.

또 맏아들로서 살아 온 자리매김도 있으리라!

부모님께 물려 받은 좋은 습관들로 장착되어 온 힘도 있으리라.

여전히 신혼때만큼 남편은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그래도 카페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모른다.

며칠 전 큰 아이가 엄마랑 다투게 되도 둘이서만 말하며 싸우라는 따끔한 충고도 흔쾌히 수긍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교회 지체들과 이야기 중에 내가 남편 흉을 보면 모두 시누이,시숙이 된다.

진짜 시누이는 내 눈치라도 볼텐데 정확한 잣대로 남편편을 드니 나는 깨갱 할 수 밖에 없다.

 

내 생애 속에 갈수록 긍정적인 모습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보여 준 사람은 역시 남편인 것 같다.

여전히 자신을 위해 운동하는 모습도 변함이 없다.

절대로 내가  따를 수 없는 꾸준함과 지구력이 성실함이 그렇다.

가장 가까이 있어서 내가 잘 살펴 본 것일 수도 있으리라.

마음결이 여전히 비단 같았음에도 그의 행동으로 인해 마음이 안보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일 수도 있다. 

또 남자들은 상사에게 직업속에서 인정받는 일이 더 커서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습관때문에

마음의 결 같은 것은 보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제 우인 사장님이  최소한 결혼 20년 이상 살아야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었다.

맞는 말이다.

함께 젊음을 불태웠고 부모를 공유하며 자식을 키우고 신앙하며 장례를 치르고 형제를 공유하는 일,

또 매사에 공감해 주는 일이 어디 보통 인연인가?

백세를 사는 세대라는데 서로 서로 좋은 모습을 잘 가꾸며 존중하며 살고 싶다.

둘 중 어느 누구도 더 잘나거나  못나거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같다.

서로 한치도 밀리지 않는 인정함이 있었던 것 같다.

억울함을 쌓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이 발란스를 유지하기에 좋았을 수 도 있었다.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하는데 서로 귀하게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외모를 선택하지 않았었던 것이 참 잘한 일 같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엘리사같은 대머리아저씨들을 왜 좋아하셨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부족함 투성이임을 인정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뭉뚱그려 좋아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맘껏 좋아해주면 그만일뿐이다.

자식에 대해 애달픈 마음을  항상 유지하는 것과 같은 그런 마음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