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퇴원하셔서 "감옥에서 나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노인요양병원에 계속두면 혼자 스스로 나오시려고 바지 주머니에 만원을 넣어 가지고 계셨단다.
큰 언니가 병원에만 계시면 불쌍하니 병명을 알았고 치료가 되셨으니 집으로 모셔가자고 하셨었다.
침대에 묶여 하루종일 주무시다가 밥때만 깨어나서 밥을 드시고 또 자고 자고 하는 환자분이 옆에 있었는데 바라보고만 있어도 힘이드셨단다.
큰언니가 병원에서 휠체어에 모시고 가다가 한번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 하였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혼자 운전도 하고 주차하고 병원을 모시고 다니는 일이 환갑을 넘은 언니에게도 벅찬 일인 것은 사실이다.
마침 작은 언니가 같이 동행을 해주어 감사했다.
그런데 열흘 동안 병원에 있다보니 섬망증이생겨 작은 언니에게 서운한 말을 하여 작은 언니가 다시는 엄마 얼굴 안본다고 우리집으로 도망 오시기도 했었다.
언니를 설득하여 다시 엄마에게로 같이 갔었다.
딸들이 돌아가며 시간을 내어 눈수술하시는 부모님을 간병하기로 하였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혼자 집에서 열흘 동안 살아보니 작은 언니가 드나들며 챙겨드렸었는데도 외로워서 못사시겠다고 자식 집이 아무리 멀어도 어디든 가시겠다고 하셨다.
행여 아직 까지 이곳에 사셨다면 나의 일이었기에 큰 언니께 늘 미안한 마음이 컸다.
큰 언니가 미국에 있는 남동생에게 연락을 하라고 하여 내가 연락책을 맡았다.
늘 세끼 식사시간 외에는 침대에서 주무시기만 하시던 아버지께서 동생네가 오니
두분다 TV를 보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시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완전히 다시 살아나신 것이 너무 신기하였었다.
'나이드신 부모께 아들은 이런 존재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더 이상 밥을 잡숫고 침대로 들어가시는 일이 없어졌다.
'부모님이 힘드실때마다 동생이 와주어 살아나셨으면'하는 바램이 생겼다.
요양사님이 아버지앞으로도 엄마 앞으로도 배정이 되어 두분이 함께 사실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곁에 두언니들이 계셔서 또 감사하다.
우리 노 할머니 만큼이나 오래 사실 것 같다.
갱년기를 지날때즈음 아버지가 요강을 방안에 넣어 놓았어야만 했을만큼 넘 아프셨었다.
큰 언니는 지금까지 가장 오랜 기도 제목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래살게 해주세요!"였단다.
엄마도 뚱뚱하셔서 늘 걱정이 많았었다.
당신들이 이십대 후반에 결혼 하셨고, 큰 언니도 이십데 후반에 결혼하였고
큰 손녀는 삼십대 초반에 결혼 하였는데 그것을 보셨으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
백세를 살아도 우리 부모님같이 만 살 수 있다면 더한 복은 없다고 생각된다.
깔끔하게 신앙인으로 사셔서 그럴 것이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