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아이는 몇가지 부탁을 남기고 갔다.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아 달라는 부탁과
키우던 타란튤라를 드림수족관에 기증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키우기 시작하였었는데 강아지도 죽고 타란튤라까지 과감하게 보낼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어른으로 진입하는 시점이어서 나름대로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을 싸고 있었던 껍질을 깨고 성장을 온전히 이루려 몸부림치는 구나!' 싶어진다.
인생의 긴 여정속에서 순간 순간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늘 변하는 것 같다.
작은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커가는 과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준 것 같다.
화성과 금성의 다름 이상으로 부모와 자녀의 사이도 세대간의 격차로 인한 소통부재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잘 안다.
차츰 아이가 부모를 이해하게 되어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
퉁퉁거림이 아닌 들뜨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상황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감사하게 되었다.
부모가 주는 믿음의 크기만큼 아이가 우리 가슴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스마트 폰도 공부하고 기능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 처럼 늘 아이의 심리를 알기위해 배우고 고민해야함을 느낀다.
대학때면 그 시절나름대로의 갈등을, 직장인이 되거나 결혼하게 되면 아이는 역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어 주리라 기대한다.
기독교 방송에서 한번은 이어령선생님이 이재철 목사님과 함께 성경이해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부모가 다 죽고 없어진 뒤 모태신앙인들이 겪을 수 있는 40.50대의 방황에 대해 살짝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부모의 역할이 하나님을 비춰주는 역할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부모가 없을때 방황하게 되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였었다.
오히려 젊은날 맘껏 방황하고 실컷 아파하는 것이 살아감에 있어 더 큰 힘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부모된 심정은 아무탈 없이 바르게 정도를 걸어주기만을 바라게 되는 것 같다.
탕자가 돌아왔을때 늘 기쁨으로 맞이해 줄 부모가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김하중 장로님처럼 40대가 아닌 20대에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깊히 알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였었다.
바라기는 피가 뜨거울때 하나님을 향해 열정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이 되길 기도한다.
큰 아이가 예수전도단의 DTS훈련과정을 선택한 것 처럼
작은 아이도 자신의 인생의 가장 귀중한 시기에 주님을 닮고자 하는 그 길을 걸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