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일정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토요일에는 결혼식에 갔다가 친정 부모님과 온종일 돌아다녔었다.
남편이 오후에 시간이 된다고 하여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백봉령으로 드라이브 갔었다.
냠편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뼛가루를 뿌린 곳에 가고 싶어하였었는데 올라가는 길이
아직도 눈이 덮여 있어 다음에 가기로 하였다.
내려 오는 길에 <마당>에 들려 곤드레 밥을 사드렸었다.
마침 어제가 부대를 방문하는 날이어서 밤9시에 교회에 가서 도넛을 만들기 위해 미리 반죽을 해 두었었다
주일날엔 새벽예배에 끝나고 집에 와서 곧장 청소하고 교회가기에 바빴다.
저녁때 고모네가 온다고 하여 청소를 하니
<시집식구들이 무슨 저승사자라도 되느냐?>
<있는 모습그대로 보여주어라>며 퉁퉁거렸다.
낮 예배 드리고 찬양대 연습하고 도넛반죽을 분할 하여 성형하는 것을 도왔다.
오후예배 드리고 찬양대 연습을 하고 나니 목이 다 쉬었다.
잠깐 주방에 얼굴만 보이고 집에 와서 정리와 청소를 하고 있다보니
고모네 가족이 7시나 되어야 올 수 있을 것 같단다.
원래는 저녁을 사먹기로 했었는데 시간이 넉넉하니 밥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토요일날 계속 음식을 사먹었더니 집밥이 무척 그리워졌던 터였다.
마침 큰 언니가 보내주신 고들빼기 김치가 억세다고 하셔서 엄마에게 얻어 놓은 것도 있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가자미 식혜도 있어서 같은 돈이면 밥만하면 될 것 같았다.
강릉에서 밥한끼 사먹자고 오게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축협에가서 쇠고기를 부위 별로 8만원어치를 사왔다.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농사지은 월동추를 뜯어 씻어 오셨다.
과일은 사과와 파인애플,참외를 사두었고 고모가 방울토마토를 사왔다.
도착하자 마자 고기를 굽고 코다리조림과 가자미식혜,김치,고추지무침,월동추무침,김치가 전부이고
상추와 월동추로 쌈을 싸서 먹었는데 월동추가 정말 달고 부드러웠다.
온 가족이 정말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감사했다.
미리 제사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짐이 덜어진 느낌이었다.
남편도 공식적으로 기일을 준비하진 않아도 늘 기억하고
가볍게 식사와 삶을 나누고 아버님 납골당에도 같이 가면 좋겠단다.
고모부가 사업을 시작하고도 이렇게 시간을 내어 멀리 와서 집안 일을 함께 참석해주어 고마웠다.
나이가 드니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 더 애틋해짐을 느낀다.
<서로 보듬고 어깨 두드려 격려해주고 또 불쌍히 여기고 아껴주면서 사는 것이 참된 가족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들었다.
오늘 큰 아이와 커피 마시러 숲에 가면서 말해주었다.
<20대 때는 40이면 인생이 다 산것인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40이넘으니 그런대로 살아지더라
오십이 넘어도 또 그렇게 살아질 것 같아>
오늘 아침 남편과 작은 아이를 보내고 누웠는데 정신이 없었다.
땅으로 온 몸이 꺼지는 것 같고 자지러질 것만 같았다.
제대로 쉴려고 준비하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정말 부럽단다.
춘희씨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소금이 도착했단다.
저절로 벌떡 일어나졌다.
최쌤에게 미역과 소금을 배달 해 주었다.
직접 내려 주신 커피 또한 환상적이었다.
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나니 충전되어 살아갈 힘을 다시 얻게 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