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나의 평생 감독님, 나의 조종자.
차두리가 "나의 아버지, 나의 평생 감독님, 나의 조종자, 그리고 나의 영웅. 같이 있으면 힘이 난다!!"
는 글을 남겼다.
차두리 로봇설을 재미있게 읽어 왔었던 터였다.
본인의 고백을 들으니
아버지의 길을 따라 함께 가며 아버지로 부터 도움을 얻으며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이 참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의 심정으로 글을 읽게되니 더 감동적이었다.
차두리처럼 완성단계가 아닌 아들인지라
아직도 늘 조심스럽다.
자기만의 길을 가기 위해 스스로 감당해야할 고통의 순간들을 이겨야만 하기에 더욱 그렇다.
아빠에 대해 아들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남편도 차두리의 고백이 가슴에 콱 박혔을 것 만 같이 여겨졌다.
남편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한는 것 같은 느낌이 가장 싫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교사야 말로 가르침에 있어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까지라도 감동시켜
익히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남을 설득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은연 중에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도록 온갖 단어와 감정을 써서 회유하려는 경향이 많음을 남편도 알리라.
이제 나이가 드니 상대당의 말하는 의도를 계산해 보게된다.
사탕 발림 같은 칭찬이 계산 된 의도임이 느껴질 때가 많다.
내가 감동할만한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면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익숙해진 편이다.
자녀를 향해서도 진실함이 아니면 안됨을 느끼게 된다.
부모된 우리는 진실이건만 아이들은 그렇게 받아 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안다.
협상의 테이블에 나오도록 만드는 것이 테크닉이 아닌가 싶다.
이시점에서 자녀를 향해 부모는 믿음을 보여 주는 것만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큰 아이는 휴학하고 싶어한다.
나의 마음은 보류가 아니고 직진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컸었다.
빨리 졸업하는 것이 부모된 우리를 더 도와주는 것임을 알기에...
하지만 아이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쉬어 가는 것도 귀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남편이 터어키에 가있는 동안 휴학이야기가 활성화 되었었다.
귀국한 후 남편은 큰 아이의 휴학이야기를 듣자마자 큰소리로 반대를 하였었다.
하지만 한시간도 안되어 설득을 당하였다.
결국 우리의 반대로 더 이상 휴학에의 마음이 불붙지 않게 되었으니 결국 자신의 판단만 남았다.
작은 아이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려서 공부하게 할 수 없기에... 스스로 변화해야만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