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동생네 가족들이 한국으로 완전 귀국하였다.
늘 멀리서 전화로만 안부를 물으며 평생 그렇게 살 줄 알았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온 것 같은 설레임을 갖는다.
다른이들은 동생네나 오빠네 가족들과 한 15년이상 부대껴 오면서
소원해져 있는 집들도 많이 있다.
가장 많이 부대끼며 살아온 형제들이기에 피가 섞이지 않은 동서, 올케나 형부들이 생기면서
가족관계의 판도가 변하고 중요한 원칙들을 깨달아 가고 나름대로 지혜롭게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살아 왔다.
형제지간은 물론이려니와 부모 자식지간도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면 가정대 가정으로 만나야 함을 알기에
더 조심스럽고 예의를 갖추어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 닫는다.
나는 늘 그리움이 먼저였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동생네 가족과 관계 시작이다.
서로 나이가 어느 정도들었으니 더 세련되게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젊은 날의 힘든시기도 다 지났으니 너그러움으로 다가가게 되리라....
서로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어야 하리.
네명의 딸 밑의 아들이니 가장 귀하게 자라왔어서인지
아직도 늘 보호 해 주어야만 할 것같은 느낌이 든다.
친정이니 동생내외가 조카들 모두 건강하고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보였는데
모든 것들을 잘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큰 언니네가 좋은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에 또 감사하다.
생애 처음으로 명절에 멀리 떠나보게 되었다.
집을 구입하여 미국에서 살던 식으로 집을 수리하였다는데 정말 궁금하다.
부모님의 친한 지인들이 늘 그림의 떡과 같은 아들이라고 말씀하여
항상 심기가 불편해 하셨었다.
여전히 멀리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모님께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잘 해드리지도 못했으면서도 늘 내가 보살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큰 언니네가 들어 왔었을때와 또 다르게 더 큰 안도감을 갖는다.
믿음의 모범가족으로 아이들이 그렇게 잘 자라주기만을 기도한다.
큰 아이가 자기 동생보고 "나보다 네가 더 많이 성공하였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어쩜 동생에 대한 마음은 세대가 달라도 그렇게 같은지....
세상에서 마냥 편할 수만은 없는 그런 몇 개의 관계들중 또 하나를 잘 유지하며 살고 싶은 갈망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