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떠나 보내며(A Father's Blessing)
집을 한 번씩 뒤집을 때마다 남편과 내가 늘 다투곤 한다.
"지나간 잡지를 왜 버리지 않느냐?"는 남편과 끝까지 그것을 사수하고자 하는 나의 고집 때문에
싸우곤 한다.
때로 문자 중독과 같은 증세가 있어서
나는 화장실에 가는 정말 짧은 순간에도 글이 읽고 싶어 져서 늘 잡지를 들고 들어가곤 한다.
물론 최근에 나온 잡지들도 사서 읽기도 한다.
그런데 지나간 잡지를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곤 한다.
떠나가는 아이보다 떠나보내는 부모마음이 더 문제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분명 우리도 동일하게 정말 과감하게 부모 곁은 떠나 왔으며 잘 살아왔음에도
왜 그렇게 담대하게 보내기가 어려운지...
지난 화요일에 친한 선생님과 점심을 같이 먹었었는데 우리들의 화제 중 하나는
자녀들을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들이었다.
집에 와서 우연히 잡지를 들었는데 내가 큰 아이를 보내게 되며 느꼈었던 내 마음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나의 블로그를 방문해 주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글을 싣고 싶어졌다.
1987년 10월 25일에 발행된 영한대역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글이다
아들을 떠나보내며(A Father's Blessing) -제프 데이빗슨-
아침 8시 15분 전' 아들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17년 동안 앉았었던 그 식탁에 앉아 주스를 마시며 빵을 씹고 있었다. 부스스 일어선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넘기면서, 친구를 불러내듯 빵빵거릴 스쿨버스의 경적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저애가 없으면 허전하겠지?'그러나 아직은 내 손을 닿을 가까운 곳에 저렇게 앉아 토스트 한쪽 표면에 딸기잼을 빈틈없이 바르느라고 여념이 없다.'저 애는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겠지?' 어린 나무처럼 여린 그의 마음은 감상을 모르는 현재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는 이륙하기 위해 엔진을 한껏 가속시키고 있는 비행기와 다름없다. 아침식사가 끝나기 7분 전이다. 이제 100번쯤 더 아침을 같이 먹고 나면 저 아이의 어린 시절은 끝난다.'바람처럼 다가오고 있는 9월이면 저 애가 앉은 저 자리는 텅 비게 되고 잼을 흘린 자국도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 손가락에 묻은 잼을 맛있게 핥아먹는 대신 자립이라는 맛에 취하게 되겠지.'소크라테스의 발밑에 앉아 우주의 진리를 배우던 제자들이나 노트르담대학교 운동장에서 뛰놀았던 앞선 세대의 학생들처럼 그도 한 사람의 어였한 대학생이 될 것이다.
제발, 잠깐만 그게 어떤 강인지는 모르지만 거기 저 애의 허술한 돛단배를 그렇게 서둘러 띄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날마다 함께 즐기던 아침식사의 추억은 다 어디로 가버렸지? 침대 곁에서 잠을 재우며 들려주던 이야기들, 생일케이크, 손 장난으로 그리던 그림, 무릎에 덧 댄 헝겊, 모형비행기, 하키골퍼용 장갑, 등산화, 사춘기의 이런저런 일 대학예비고사, 아름다운 꽃장식이 걸린 디스코장의 추억은 어디로 갔지?
우리는 6,000번이나 한 지붕 아래서 잠을 자고 새로운 아침을 맞아 왔다. 우울한 어느 날을 위해 그 하나를 간직해 둘 수는 없을까? 우리는 1만 5,000번이나 함께 식사를 즐겼다. 그런데 왜 기억에 남는 시간은 대여섯 번 밖에 안될까? 무엇 때문에 그처럼 바쁘기만 했지? 저 아이가 갓난아기 때 웅얼거리던 소리며 요람이 리드미컬하게 삐걱거리던 소리는 선명하게 기억된다. 어린어린 손가락을 가시에 찔렸을 때 강보애에 쌓인 아이를 안고 소리 지르며 거리를 달려가던 아내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당한 첫 고통에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우리는 함께 넓은 시골 풀더미 위에서 씨름하던 일이 생각난다. 깔깔거리며 웃어 대는 그 통통한 몸뚱이를 번쩍 들어 올려 거듭거듭 푸른 건초더미에 위에 내던졌었지. 갓 깎은 싱그러운 풀냄새와 나무 그늘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머리카락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그간의 경위를 껑충 건너뛰어 메인주의 숲 속에서 만난, 비가 장대같이 퍼붓던 어느 칠흑 같은 밤으로 생각이 달려간다. 아들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깔깔대면서 자전거 앞바퀴를 돌리고 있다. 빗줄기에 얼룩지는 자전거 헤드라이트의 희미한 불빛에 내가 비에 적은 지도를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알프스의 어느 봉우리 위에서 의기양양하게 버티고 포즈를 취하던 일이다. 하지만 알프스 계곡에서는 무엇을 했던가? 화요일이나 2월의 기억들은 다 어디로 갔지? 녀석이 열한 살 때에는 무슨 일이 있었더라? 1978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더라? 추억에 떠오르지 않는 나머지 나날은 함께 숙제를 하거나 운동화를 사러 가거나 일요일 오후 할 일 없이 빈둥거리거나 하면서 그렇게 빨리 허송했단 말인가? 우리는 초콜릿아이스크림이나 스포츠계의 신기록 수립이나 종속절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사랑이나 명예와 진리에 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한 번이라도 가져 본 적이 있었던가?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내가 서둘러서 사랑이니 명예니 진리니 하고 지금껏 못다 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녀석은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식은 커피를 젓던 숟가락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접시에 엎어 놓는다. 그러나 뚫어지게 응시하는 내 시선으로 지금 이 시간을 제자리에 정지시킬 수 있다면, 나는 아들이 찻숟가락으로 커피를 젓는 그 모습을 얼어붙게 하여 이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생생하게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다. 미풍이 살랑대며 펼쳐놓은 전화 번호부 책장을 조용히 넘기고 있다. 어디선가 계피냄새가 풍겨온다. 제 엄마가 손을 뻗어서 빵을 더 권한다. 수도꼭지에서 똑똑하고 물이 듣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일상적이면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현재가 구름처럼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애쓴다. 모두들 미동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다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가운데 어느 것도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운드 트랙에서는 소음의 둔주곡이 몽땅 지워져 버리겠지? 소곤소곤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전화소리 꽝 하고 문을 닫는 소리의 이중주도 사라지고, 헤어드라이어의 윙윙거리는 소리, 뻔질나게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 새벽에 늦게 집에 돌아와서 열쇠를 깔딱거리며 현관문을 따는 소리도 사라질 것이다. 기타를 뜯는 소음이 들려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계절이 바뀌면 저 아이가 이곳을 지나갔다 하는 흔적들이 조용히 지워지겠지. 쏜 살같이 날아기는 녀석의 흥미를 붙잡았다 놓치고 나서 여기저기 펼쳐진 채 널려있는 책들, 거실 한복판에 놓여 있는 뮤직스탠드, 일주일 동안 입은 온갖 옷가지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광경은 모두 자취를 감출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복도에서 나누던 한밤의 대화도 이젠 없을 것이다. 오늘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도 앞으로는 편지로 써야만 하겠지.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속상한 일, 급한 일이 있을 때도 전화를 이용해야 하겠지. 전 같았으면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에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가을부터는 저 애가 우리를 찾아보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하겠지. 한 지붕 아래서 아무때나 옷깃을 스치면서 정다운 미소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특별히 마음먹어야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저애가 내게 얼마만큼 시간을 내줄지 알 수 없다. 녀석은 시계가 알려주는 것이 무심한 시간뿐인 것처럼 시계를 들여다본다. 나는 서두를 것 없다는 다정한 몸짓으로 한 팔을 뻗쳐 녀석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나누는 통과의식이 아니다. 녀석이 유모차를 타고 적진후방에 투하되듯 어느 해 9월 처음 유아원에 가던 날부터 우리는 비행훈련을 받아 온 동료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기 야영훈련을 무사히 넘겼고 녀석은 처음 해보는 면도도 탈없이 해냈다. 이번도 무사히 통과하리라. 내가 그 애 덕택에 행복하다는 것은 하나님도 아시고 있다. 그러니 샴페인을 터뜨려 녀석이 멋진 항해를 시작하게 축복해 주리라. 그에게 자유를 주고 인생을 즐게게 하소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모든 젊음과 낭만에 약간 질투를 느낀다는 것을 결코 고백하진 않으리라. 덧없는 세상사를 살아가면서 녀석이 이따금씩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 흐뭇한 저녁 같은 소박한 즐거움을 그리워하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도 입밖에 내지는 않으리라.
목이 메는 내 축복을 들으며 너는 가리라.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 매고 먹을 것과 옷가지와 휴대용 계산기를 챙겨 넣은 괴나리봇짐을 지고 너 자신에게 진실된 길을 찾아 떠나거라. 냉장고에는 언제나 살찐 송아지를 넣어 두겠다. 하지만 오늘밤 만은 여느 밤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내자. 내 면도기를 빌려 쓰고 옷을 아무 데나 팽개 쳐 두어도 무방하다. 스테레오에서 나오는 감미로운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아도 좋다. 우리 중년부부의 깔끔한 생활공간을 네 활력에 넘치는 무질서로 휘저어 놓아도 좋다. 우리는 너를 떠나보내는 시간의 카운트다운을 조촐한 즐거움의 작은 깃발을 흔들어 기념하리라. 보이지 않는 코밑에 그 순간들이 다 숨어 있었구나. 월요일 아침이 보배임을 모르느냐고 누가 마지막 암시를 준다. 아침식사야말로 달나라 여행에 맘먹는단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가 날마다 먹는 토스트 맛을 한껏 즐겨 보자꾸나. 잼단지 안에서 달그락거리는나이프 소리도 즐기자. 너무 늦기 전에 간 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내게 들려주거나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들려주렴. 아들의 돛폭 위에 바람이 와서 앉는다. 바람은 그가 어서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둘러 이를 닦고 책가방을 집어든다.
문이 쾅하고 닫히고 나니 나는 침묵 속에 남게 된다. 나는 정물화 같은 아침식탁으로 조용히 돌아간다. 스쿨버스의 경적이 아들을 먼 해안으로 실어가는 항해의 뱃고동 소리처럼 구술피 울린다. 잘 거거라. 네 소년 시절에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오늘 밤에 다시 보자. 모퉁이에서 왼쪽으로 돌아 곧장 나가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글을 옮겨 적고 나니 눈밑에 물기가 돌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빠의 절절한 사랑이 가슴에 와닿는다. 동일하진 않지만 비슷한 많은 추억을 주었던 아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이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없다. 동일하게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내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으며 또 행복이었음을 인정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영원히 곁에 붙잡아 둘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됨을 알기에 가슴앓이를 하면서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는 부모의 심정을 애가 어이 알리요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