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토요일

걸상 2010. 3. 15. 04:14

큰 아이에게 가셔서 열흘째  함께 계시는 어머니도 모셔오고

작은 아이에게도 누나의 있는 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새벽예배를 마치고 우리세식구는 큰 아이의 집으로  떠났다.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10시40분쯤이었다.

가는길에 우동으로 아침도 해결하였었고

휴게소에서 어머니 남방과 내 등산복 바지도 구입하였다.

마침 블랙야크가 70%세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60년대 처럼 지내셨다고 힘들다 하시면서도

아이와 있었던 시간들이 즐거워셨던것 같아 보여 감사했다.

 

작은 아이는 누나의 방을 이라저리살펴보고 창문도 열어보며 신기해 하였다.

누나네 학교 입학식때도 왔었는데 그때는 어떤 느낌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사는 도시와 너무나 다른 세상인 것 같아 두려운 맘이 생기더란다.

누나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런지 심히 걱정이 되었었던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누나에게 얼마나 전폭적으로 지원하는지를 보게 되어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어머니께서도 당신자녀들을 대학때에 모두 외지로 보내었었던 지난일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이제 손주의 외지 생활을 보게되셨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셨으리라.

 

오랜만에 다섯식구가 모였으니 저녁을 함께먹고 가자고 하여

고기를 사왔다.

아이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장을 보아와서 몇가지 밑반찬도 만들어 줄 수 있어 행복했고

또 잠깐이나마 잠을 잘 수 있는 귀한 공간을 허락해 주심이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모두 열린마음으로 삶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오늘 예배시간에 저절로 감사의 고백이 나왔다.

 

자기의 게임시간이 빼앗기는 것이 싫어서 부모와 같이 가는 것을 싫어 하던 녀석이

누나가 궁금하기도 했겠지만 일주일간의 기도로 수용하는 마음이 커진 것 같아보여 감사했다.

같이 여행가자는  설득이 먹혔으니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고등학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늘 우리의 가장 귀한 그리고 급한

현안문제인 기도 제목은 바로 너다 라고 설명해주었다.

 

전병욱목사님이 쓰신 <히스기야의 기도>에 기록한 글을 읽으니 내가 느끼고 있던것을

잘 정리해 두심을 느꼈다.

기도로 변화된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확실한 특징은 수용성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중심적인 신앙세게로 들어가면 그사람은 수용적인 존재로 변화된다.

 

오늘 광고시간에 목사님께서 세이레 새벽예배 출석상을 주신다고 하셨다.

자기가 학생회 1등이 될 것 같단다.

내입에서 저절로 아멘이 나왔다.

 

며칠전 예언처럼 자기 앞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이야기하였었던대로 이루어진것을 경험하고는

늘 믿음안에서 긍정적으로 자기의 미래를 이야기 하곤한다.

대학교에 가서도 지속적으로 새벽예배에 나갈 생각이란다.

나는 그 입술의 고백이 열매로 맺혀지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이 블로그에 기록한 글을 읽으며 훗날 자신을 정리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다섯살 아이를 데리고 새벽예배에 나오시는 김전도사님 사모님처럼

주중에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할때면 때로 바지를 입히고 옷을 챙겨주고 양말을 챙겨서 데리고 가야만했다.

우리 가문의 기도의 후대로 삼아지기를 위해

그 마음 중심이 주앞에 사로잡히기만을 지속적으로 기도해야함을 안다.

또 익숙해 질때까지 힘들어도 관리해주어야함을 느낀다.

훈계하고 설득하고...

우리부부가  먼저 신실한모습으로 모범이 되어야하리라.

 

 

오늘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를 읽었다.

우리부부도 또 우리 아이들도 일생동안 야베스처럼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였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장 9~10절

 

저녁을 먹으며 고집사님께서 아빠보고 <아들과 같이 잠을 자는 것이 부럽다>고 하셨다고 하니

내심 좋아하는 눈치다.

부모와  아이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임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고등학교생활은 잠을 어떻게 잘 자느냐가 가장 중요함을 알기에

책을 읽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잠자는 시간을 자칫 놓치게 되면 

다음날  하루온종일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남편은 날마다 아이와 같이 잠자며

잠을 관리 해주고 있다.

잠자기전에 기도해주고 아침에 또 기도로 깨워준다.

큰 아이때에는 어머니께서 아이와 같이 주무셨었기에 짧은 시간 깊히 잠을 잘 수 있어 늘 감사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커 갈수록 주님의 도우심없이 우리의 능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여호와 이레

주님께서 아이를 위해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또 가장 최고로 높은 수준의 방법이었음을 깨닫는다.

수련회 도중 아빠가 아이의 발을 씻겨주는 시간들을 통해 아빠의 마음을 알게된 것 같다.

아빠가 발을 씻겨준 후 아이를 부둥켜 알고 울었던 모습도

아버지가 발을 씻겨 준 뒤 제 자리에 와서 계속 울고 있었던 아이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새벽예배때에 졸리다고 하면 양쪽에 앉아

한손은 내가 한손은 아빠가 만져서 아이를 졸음에서 깨워주려고 노력하곤한다.

 

아빠와 아이와의 관계가 점점 학년이 올라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 감사하다.

아이의 내면의 건강함은 가장 먼저 부모와의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

남편이 늦게나마 아이와의 친밀함을 위해 헌신해 주어서 감사하다.

남편은 밤마다 머리 맡에 성경책을 가져다두고는 아이곁에서 엎드려 읽다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졸리워하는 아이를 위해 아이와 내가 먼저 새벽에배 끝나고 집에와버리면

남편은 정해진 자기 시간까지 기도하고 온다.

중일부터 지금까지 아빠와의 친밀도를 그래프로 그린다면 아마도 지금이 가장 높은 지점을 그리게 될 것이다.

지난번 수련회때에 아이의 발을씻겨주고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하는데 

당신의 아버지는 한번도 자신을 야단친적이 없었다고 한다.

남편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신뢰하는데 아무런 방해요소를 없게 해주신 아빠가 너무 고마웠었단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가셔서 이땅에 안계시니 너무 눈물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단다.

남편은  그 집회때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되었다.

평소 남편은 방언의 은사가 없어도 기도가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 하곤 했었다.

아마도  마음문이 열려 마음이  너무 맑은 상태가 되니 하나님께서 저절로 은사를 주신것 같다며

이젠 아름다운 방언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고 한다.

기억속에 늘  감사했고 좋았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고 싶어졌었으리라 믿어진다. 

 

수련회전부터 남편은 아이를 위해 노력하여 왔었는데 주님께서 아이와 아빠의 마음을 동시에 만져

주신것이 너무 감사하다.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아빠로 변해 주어 또 감사하다.

아빠가 야단 쳐도 예전처럼 상처를 많이 받지 않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큰 아이도 아빠가 자기를 인정해주고 사랑한다고 확실하게 느낀것은 고등학교때였다고 하였었다.

아이는 자기가 공부를 잘하게 되어서인것 같다고 하며 섭섭해 하곤했었다.

그때는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어야만 했었다.

아마도 지금쯤 큰아이는 아빠가 자기를 얼마나 인정해주고 있는지 사랑하는지를

그때처럼 확인시켜주지 않아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아이의 성공의 열쇠는 결국 아빠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늘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이 넘친다.

또 두아이의 고등학교 시절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남편과 아이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넘친다.

어릴적 부모와의 친밀감이 잘 형성된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 성인이되어서도

그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글(파이프목사의 청소년 부흥이야기)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