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신종플루

걸상 2009. 10. 29. 20:32

신종플루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줄만 알았었다.

한 열흘전 부터 작은 아이가 감기라며 8교시가 되면 병원에 가자하여 같이 병원에 가곤 하였었다.

그런데도 감기가 잘 나아지지 않았다.

 

큰 아이가 데모중이었는데 몸살이 왔는지 집에 오고 싶어했다.

객지에서 혼자 아픈 심정이 얼마나 슬픈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래서 온가족이 집에 함께 모이게되었다.

큰 아이가 얼마나 열이 많이 나는지 처음에는 큰 아이가 신종플루인 줄만 알았었다.

 

큰 아이는 아래층 침대에서 내가 데리고 잠을 잤고 작은 아이도 열이나서 2층의 아이침대에서

남편이 안아서 잠을 재워주었다.큰아이는 지난밤과 비교하여 보니 아침에는 열이 떨어져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 병원에갔더니 큰 아이는 37.6도였고 작은 아이는38.2도 였다.

신종플루검사를 하려고 하였더니 큰 아이는 0.2도가 모자라 검사비가 더 많이 들었기에

작은 아이만 검사를 하기로 하였다.

큰아이는 감기처방을 하여 약을 타오고 작은 아이는 간단한 검사와 신종인플루엔자 검사를하였는데

유사증상이어서 타미플루처방을  받아서 집에왔다.

2,3일 걸려야 확진여부를 알 수 있는데 학교에 가자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사실을 담임선생님께  알리고 남편도 당신의 보건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니

쉬는 토요일이어서 오후쯤에 연락이 왔었는데  학교에 삼일간 나오지 말라고하셨다.

다른학교 보건 선생님은 당신 아이도 신종플루였었는데 괜찮았었다시며 출근해도 상관없다고 하셨었다.

우리교회의 권사님께도 말씀을 드리니 모두를 위해 교회에도 나오지 않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졸지에 우리가족이 토요일 오후부터 집안에 갇히게 되었다.

우리아이들이 어릴적에 수두걸린 아이를 낮예배시간에 데리고 오셔서 작은 아이가 수두가 걸렸었다.

하지만 수두인줄을 알았었기에 조치를 빨리하여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치루었었던 기억이 났다.

작은 아이가 수두 걸린지 딱 18일쯤되는 시점에 큰아이도 수두가 걸려 주사를 맞았더니 큰 흉터 없이

지나갔었다.셋째언니의 딸 큰조카가 6학년때에 우리집에 오자마다  홍역이 생겨

우리 아이들도 같이 겪게 하려고 병원에서 주사를 맞히고 같이 누워 자게 했었던 기억도

아련하게 떠 올랐었다. 

 

 

작은 아이가 자기 기억이 있는 한 지금까지 주일날 예배시간에 가지 않았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단다.

나는 기억도 없는데  자신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주일 정각 열한시에 모두 샤워를 깨끗하게 하고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을 읽고 사랑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나는 사일동안 휴가를 받은 느낌이었다.

365일중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최소한 9시 까지 학교에 가야 했었기에 기상의 마지노선은 8시 였었다.

그런데 모두 집에 있어야 하니  9시에 일어나 아침을 하여10시에 밥을 먹곤하였다.

밥을 하여도 재미기 있었다.

단숨에 모든 음식을 싹 먹어 주어서였다.

오랜만에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을 다 만들어 주었다.

닭죽,돈육김치두루치기,닭도리탕,오징어와 쥐치회 무침,귤 한박스,부라우니,라쟈냐...

 

큰 아이가<엄마!  마치 우리가족이 곧 죽을 몹쓸 전염병에 걸려 버림받은 느낌이야!>
<그래도 정말 좋아! 이렇게 쉬어 본 적이 또 언제였었던가 싶어요! > 한다.

우리는 다 잊어버린 지나간 이야기들도 나누었다.

남편도 처음 당신이 출신학교에 발령받아 열정만 있었고 철이 없었던 때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어째튼 잘먹어서 인지 남은 가족은 아무 이상없이 잘견디어 지나갔다.

남편도 화요일 저녁부터 문상갔었고   

작은 아이는 타미플루를 5일치를 먹고 이틀을 더 쉬고 학교에 가도 된다고 하였다.

토요일 오전부터 타미플루를 먹였다. 

큰 아이도 수요일 오후에 올라갔고  남편은 수요일부터 학교에 나갔다.

 

아마도 남편의 출근에 대해 이렇게 엄격하게 다루었던 이유는 고3수업을 해야하는데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것 같았다.

수능은 어쩜 아이의 일생 일대의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이니 열이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까봐

철저하게 관리하여야 했었던 것 같다.

 

넷이서 함께 뭉쳐있었기에 물론 서로 컴퓨터문제로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공동운명체임을 절실하게 깨달았었던 순간들이었다

나는 컴퓨터근처에도 가지 못하였었고 엄마와 멀리있는동생과 언니들로 부터 또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지속적인  안부전화를 받는 것도 행복하고 감사했었다.마치 관리받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렇게 똘똘 뭉칠 수  있었는 일 언제였던가 싶다.

내가 작은 아이가 덮었었던 이불을 안고 있었더니 큰 아이가 빨리 내려 놓으란다.

<사랑하는 아들이 덮은 것인데...>하니

<아들은 사랑해도 되지만 아들의 균은 미워해야지...>한다.

섬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던 날들이었지만 참 행복했었기에  감사하다.

남편은 직장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었단다.

작은 아이도 이젠 학교에 가고 싶단다.

전세계가 벌벌떠는 신종플루 항체가 생긴 가족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격정적이고 힘든 모든 추억을 또 한번 더 공유한 가족으로 말이다.

우리아이들이 힘들더라도 함께 이기는 방법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느낄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하나님의 지키심이 없다면 어찌 우리가  안전할 수 있으랴?